[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두 남자가 있다. 미술관 경비원과 작가다. CCTV와 같은 감시 역할을 하는 경비원과 미술관 내에서 감시를 받는 관람객인 작가는 사회적인 역할로 구분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작가는 경비원에게 개인적인 '친분 만들기'를 제안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관 밖에서 식사나 운동을 함께 한다. 참여자인 경비원은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자율권이 있다. 작가가 시도한 '관계 맺음' 설정은 어느 시간까지 지속할 수 있었을까?
긴장관계 극복을 위한 프로젝트 과정은 작품으로 남겨졌다. 사진과 비디오, 설치물이다. 5월 10일부터 시작된 두 남자의 만남은 24일로 끝났다. 바깥에서 만나고 식사하고 작품도 소개하고, 소개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 악수를 나눈 뒤 경비원은 "참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주기적인 만남을 거절했다.
전시장 내에는 관계성와 공간, 변화를 질문하는 작품들이 두루 보인다. 작가 이미혜 또한 오 작가의 작업처럼 '업사이클링' 작품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플라토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복제품이 여러 공정을 거쳐 나사못으로 제작됐다. 작가는 나사못들을 박아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는 글씨를 흰 벽면에 남겼다. 반대편 벽면에는 복제품이 나사못이 되는 과정을 기록해 보여준다. 작품은 제목처럼 단순한 재활용(recycling)이 아닌 다른 차원의 의미를 덧붙이고 있다. 로댕의 작품이 상징하는 근대미술의 의미와 오늘날 미술적 가치에서 포용되는 광범위한 '변형'을 작업에 녹였다.
이처럼 여러 작품에서 어떤 주제의 변주, 기원과 확장, 반복과 차이 등을 엿볼 수 있다. 작가 이형구는 신작 'MEASURE'에서 말의 움직임을 흉내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고안한 장비를 걸치고 기괴한 움직임과 말굽의 리듬으로 퍼포먼스를 기록하고, 3명의 작가로 구성된 길종상가는 플라토 전시장의 기둥과 비슷한 축대를 이어 식물, 조명, 사운드 기계 등을 비치했다. 지니서는 애니메이션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연상시키는 수많은 가죽 끈들을 전시장 두 기둥을 크게 감싸는 형태로 구성했다. 미나와 Sasa라는 두 작가는 공동작업을 통해 '진정성'이란 글씨를 700번 반복하며 곱씹는 텍스트와 미국 리글리 사의 사탕제품 '라이프 세이버스'를 확대해 3D 프린팅한 오브제를 마주하게 했다. 작품들을 잇는 전시장 출구 방향으로 여러 개의 화살표 사인들이 붙어있다. 전시장 안은 세월호 사건 등이 표출한 신뢰가 무너진 사회를 꼬집는 듯 그러면서도 이를 극복할 출구찾기를 이야기하듯 강렬하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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