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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네 명의 친구(103)

최종수정 2014.07.21 07:11 기사입력 2014.07.2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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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늘 따르는 네 명의 친구가 있다.

가장 친한 친구는 교만이다. 조금만 뭔가 이뤄내고
무엇인가 풀려간다 싶으면 이 친구는 어김없이 찾아와
내 마음을 돋운다. 네가 최고라고, 넌 잘했다고,
남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함부로 깔봐도 될 존재라고,
부단히 격려를 해준다.

그다음 친한 이는 분노이다. 자존심을 풍선처럼 부풀려
그것을 건드리는 자들을 서슴없이 물리치라고 말해준다.
무엇이든 다른 이를 제압하는 것은 분노가 제일이라며
혈압을 높여주고 핏대를 세우게 해준다. 자신의 분노가
그저 다혈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당하고 대범하며
본질적인 분노라고 부추긴다. 강자보다 약자에 대해
더 화를 쉽게 내도록 도와주고, 유리한 자보다
불리한 자를 향해 더 밀어붙이라고 다독인다.

세번째 친한 친구는 핑계이다. 장자가 허선촉주(虛船觸舟)에서
만난 그 친구이다. 어떤 배에 내 배가 부딪쳤다.
그러면 나는 금방 화가 난다. 어떤 놈이 내 배를 쳤단 말인가?
그 놈 때문에 내 배가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사공이 가만히 보니 눈이 먼 사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게 윽박지른다.
네 놈이 눈이 멀어 사람이 안보이니 이 지경이 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사공이 아니라 개가 앉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놈의 개가 낑낑 대며
몸을 움직여 배를 여기로 끌고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사공도 개도 없이 빈 배가 와서, 부딪쳤다.
이제 욕할 놈은 바람과 파도 뿐인데 이를 어쩐다?
그때에야 그는 생각한다. 내가 전방 주시 태만으로
흘러다니는 저 배를 보지 못했구나.
세상의 핑계는, 정말 핑계거리가 전혀 없어져야
자신에게로 화살을 돌리게 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 친구가 내게도 자주 찾아와, 모든 문제는
네 탓이 아니라고 열심히 가르쳐주고 간다.

네번째 친구는 경솔이다. 이 친구는 다른 친구들만큼
목소리가 크지도 않고 존재감이 뚜렷하지도 않지만
어떤 행동을 할 때 거머리처럼 붙어
작은 실책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기화로
큰 결함을 이끌어낸다. 신중이라는 친구와는 상극인데
신중이라는 친구가 비교적 굼떠서 천천히 오는 반면
이 친구는 무슨 일이든지 잽싸게 달려와
일단 일을 그르쳐놓고 본다. 이 친구의 식솔에는
후회라는 친구가 있다. 두 사람은 세트처럼
움직이는데, 경솔이 항상 먼저 와서 내 손을 이끌고
후회는 그 뒤에서 내 이마를 친다.
이 네 친구가 사실은 내 인생의 허물을 만들고
눈물을 만들고 고통을 아로새겨온 것이 틀림없지만,
여전히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 줄기차게 나를
챙겨준 것이야 고맙지만, 이제 이 친구들과도
담담히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어떨까 싶다.
아주 멀리 가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서로 바라보며 생각을 나누는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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