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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은 가도 '세월'은 남아…오래가는 트라우마

최종수정 2014.05.01 10:00 기사입력 2014.05.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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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시퍼런 바다 위에서 반쯤 뒤집힌 하얀 배가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잇따라 구출됐지만, 하얀 배의 창문으로 아직도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들의 애타는 눈빛이 비친다. 빠른 속도로 침몰하던 흰 배는 이제 갑판의 꼭대기만 수면 위에 남았다. 헬리콥터와 구명정 등 구조 작업을 벌이던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가라앉는 배를 지켜보며 발만 동동 굴렀다. 이 과정을 레비전 생중계로 지켜보던 전국민도 절망에 빠졌다.

세월호 침몰 사태가 발생한지 보름이 넘었지만 생존자는 물론 전국민의 정신적 충격은 계속되고 있다. 갈수록 의혹만 쌓여가는 당국의 미숙한 초기 대응과 우왕좌왕한 사고처리 과정이 전국민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사건에 너무 몰입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롭다고 지적한다.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심각한 충격에 따른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PTSD는 생명을 위협받을 정도로 사건을 겪은 이후 나타나는 정신적 충격을 받을 때 나타는 불안감, 우울증 등의 증세다. 사건이 끊임없이 떠오르거나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등의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 PTSD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과거 대형 재난사고에서도 PTSD를 호소하는 피해자가 속출했다. 2001년 9.11테러 사건을 목격한 맨해튼 거주자들 집단 공황상태를 경험했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절반 이상이 PTSD에 시달렸다.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천안함 사건 생존자 한명이 PTSD 증세로 의병제대하는 등 당시 천안함 생존자 58명 가운데 5명 가량이 PTSD를 앓았다.

생존자 뿐이 아니다. 대형 사고를 목격한 이들도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금 당장은 멀쩡해 보여도 시간이 지난 후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 9.11테러의 경우 2003년에서 이듬해까지 PTSD 환자가 14%에서 19%로 늘었고, 특히 저소득층과 히스패닉계에서 발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된 이들이 PTSD에 더욱 취약하다는 이야기다. 테러를 당한 무역센터와 가까운 곳에서 거주한 사람일수록 PTSD를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세월호 사건의 경우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전국민이 TV중계로 지켜본 만큼 집단 트라우마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세월호 침몰이 발생한지 보름이 넘도록 실종자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정부의 실책이 더 밝혀지면서 전국민의 분노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차분히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 PTSD로 확진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은 망각'이라는 말이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치료라기 보다는 자연적인 회복 과정이 잘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시기로, 주변에서 가급적 침묵을 지키면서 피해자들이 고통스런 기간을 버텨내면서 스스로 잘 추스러나갈 수 있도록 돕는것이 최선이라는 조언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에서 슬프고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심리적으로 우울하거나 가라앉은 사람을 모두 잠재적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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