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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퇴계는 매화등을 돌려보냈다(13)

최종수정 2014.05.10 09:58 기사입력 2014.01.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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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스토리텔링 - 퇴계의 사랑, 두향(13)

[千日野話]퇴계는 매화등을 돌려보냈다(13)
아전이 달려와 대답했다.

"청소를 끝내고 돌아가 분부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겠다 하였습니다."

"그래? 무엇 하고 있는지 살펴보거라. 일을 마쳐 한가하면 들르라 하겠느냐."

"예, 사또 나으리."
아전이 두향을 부르러간 사이, 퇴계는 매화등과 수양매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자기 위에 놓인 매분(梅盆)은 제 가지를 깊이 늘어뜨린 수양매 고목과 멋지게 어울렸다. 숨을 몰아쉬며 자태를 보고 있는데, 저쪽에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 까치발로 달려오는 걸음소리가 들린다.

"두향이더냐?"

"예에, 나으리."

"어서 들라."

"예에."

두향이 들어와 분매를 바라보고 있는 퇴계의 등 뒤에 섰을 때, 그는 여전히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

"참으로 아름답도다. 저 귀한 것들은 네가 가져다 놓은 것이더냐?"

"예. 그러하옵니다."

"어찌 저런 귀물(貴物)을 여기로 가져올 생각을 하였더냐?"

"나으리가 도수매(倒垂梅)를 읊어주신 뒤 마음이 황황하고 홀홀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생각 끝에, 제 어미가 물려준 저 도자기 받침을 나으리께 드려야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모든 물건에는 참된 임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으리야말로 그 물건을 쓰실 만한 분입니다."

"어미는 어디서 저 물건을 구했다고 하였던가?"

"전해 듣기로는, 알고 지내던 어떤 사내가 선물로 가져다주었다 하옵니다. 저것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합니다. 어미는 저것을 매화분의 받침대로 써왔습니다."

"그랬구나. 살펴보니 저것은 매화등(梅花 )이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일종의 의자라고 할까. 도자기로 만든 간이의자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 그렇사옵니까? 그것도 모르고 분받침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부끄러운 일이옵니다."

"하하, 아니다, 아니다. 이것은 조선에선 보기 어려운 물건일 게야. 아마도 명(明)에서 온 것인 듯하구나. 가운데 부분에 새겨넣은 매화가 보이지? 이것을 매화걸상이라고 부른 것은 저 꽃무늬 때문이지. 그런데 가만히 보려무나. 꽃잎이 여섯개가 아니냐. 조선의 매화는 대개 오엽(五葉)인데, 저것은 하나가 더 달려있다. 도자장(陶瓷匠)이 잘못 그려넣은 것이 아니라 명나라 매화란다."

"과연 그렇군요. 비로소 이 물건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매화등 위에 매화분이 얹혔으니, 요행히 걸맞은 자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 옳은 얘기로다. 이제 저 아름다운 것을 실컷 감상하였으니, 원래 있던 자리로 가지고 가거라. 이 고을의 수령으로 온 자로서, 백성에게 긴요한 것을 쥐여주지는 못할망정, 백성이 지닌 것을 무단히 취할 수야 있겠느냐?"

"나으리.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옵니다. 무단히 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소녀가 생각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알맞은 임자라 여겼기 때문이옵고…."

"그래. 두향아. 네 마음은 알겠구나. 그러나 그건 원래 있던 데에 가져다 놓고, 너와 내가 그것을 함께 보고싶을 때에 다시 가져와 이렇게 바라보면 되지 않겠느냐. 그것만 해도 나는 충분히 즐거울 것 같도다. 내 마음을 알겠느냐?"

"예에. 나으리. 나으리의 마음이 정 그러하시면, 소녀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저 매화등과 매화분을 보고싶다 하시옵소서. 그러면 오늘처럼 대령하겠사옵니다."

"그래, 그래. 고마운지고. 오늘은 여러 곳을 행차하였더니, 몸이 노곤하구나. 저녁을 겸하여 가벼운 주안상을 차리는 것은 어떻겠느냐? 네 거문고 선율을 들으면 피로가 풀릴 것 같구나."

"알겠사옵니다, 나으리."

음식이 나오자, 퇴계는 말했다.

"두향아. 내가 읊은 시들 중에서 득의(得意)라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마음에 남는 것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겠느냐?"

"예. 나으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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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퇴계는 두향을 찾았다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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