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이 달려와 대답했다.
"그래? 무엇 하고 있는지 살펴보거라. 일을 마쳐 한가하면 들르라 하겠느냐."
"예, 사또 나으리."
"두향이더냐?"
"예에, 나으리."
"어서 들라."
"예에."
두향이 들어와 분매를 바라보고 있는 퇴계의 등 뒤에 섰을 때, 그는 여전히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
"참으로 아름답도다. 저 귀한 것들은 네가 가져다 놓은 것이더냐?"
"예. 그러하옵니다."
"어찌 저런 귀물(貴物)을 여기로 가져올 생각을 하였더냐?"
"나으리가 도수매(倒垂梅)를 읊어주신 뒤 마음이 황황하고 홀홀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생각 끝에, 제 어미가 물려준 저 도자기 받침을 나으리께 드려야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모든 물건에는 참된 임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으리야말로 그 물건을 쓰실 만한 분입니다."
"어미는 어디서 저 물건을 구했다고 하였던가?"
"전해 듣기로는, 알고 지내던 어떤 사내가 선물로 가져다주었다 하옵니다. 저것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합니다. 어미는 저것을 매화분의 받침대로 써왔습니다."
"그랬구나. 살펴보니 저것은 매화등(梅花 )이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일종의 의자라고 할까. 도자기로 만든 간이의자라고 할 수 있겠구나."
"아, 그렇사옵니까? 그것도 모르고 분받침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부끄러운 일이옵니다."
"하하, 아니다, 아니다. 이것은 조선에선 보기 어려운 물건일 게야. 아마도 명(明)에서 온 것인 듯하구나. 가운데 부분에 새겨넣은 매화가 보이지? 이것을 매화걸상이라고 부른 것은 저 꽃무늬 때문이지. 그런데 가만히 보려무나. 꽃잎이 여섯개가 아니냐. 조선의 매화는 대개 오엽(五葉)인데, 저것은 하나가 더 달려있다. 도자장(陶瓷匠)이 잘못 그려넣은 것이 아니라 명나라 매화란다."
"과연 그렇군요. 비로소 이 물건의 정체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매화등 위에 매화분이 얹혔으니, 요행히 걸맞은 자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 옳은 얘기로다. 이제 저 아름다운 것을 실컷 감상하였으니, 원래 있던 자리로 가지고 가거라. 이 고을의 수령으로 온 자로서, 백성에게 긴요한 것을 쥐여주지는 못할망정, 백성이 지닌 것을 무단히 취할 수야 있겠느냐?"
"나으리.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옵니다. 무단히 취하시는 것이 아니라, 소녀가 생각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알맞은 임자라 여겼기 때문이옵고…."
"그래. 두향아. 네 마음은 알겠구나. 그러나 그건 원래 있던 데에 가져다 놓고, 너와 내가 그것을 함께 보고싶을 때에 다시 가져와 이렇게 바라보면 되지 않겠느냐. 그것만 해도 나는 충분히 즐거울 것 같도다. 내 마음을 알겠느냐?"
"예에. 나으리. 나으리의 마음이 정 그러하시면, 소녀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저 매화등과 매화분을 보고싶다 하시옵소서. 그러면 오늘처럼 대령하겠사옵니다."
"그래, 그래. 고마운지고. 오늘은 여러 곳을 행차하였더니, 몸이 노곤하구나. 저녁을 겸하여 가벼운 주안상을 차리는 것은 어떻겠느냐? 네 거문고 선율을 들으면 피로가 풀릴 것 같구나."
"알겠사옵니다, 나으리."
음식이 나오자, 퇴계는 말했다.
"두향아. 내가 읊은 시들 중에서 득의(得意)라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마음에 남는 것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겠느냐?"
"예. 나으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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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日野話]퇴계는 두향을 찾았다
이상국 편집부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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