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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새 소득 358배…행복은 GDP순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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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연말연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 주는 이 말이 송년ㆍ새해맞이 인사말의 주류를 이룬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들이 '행복'에 대한 열망이 크다는 반증이다. 뿐만 아니라 헌법상 '행복추구권'이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로 규정돼 있는 등 행복은 인간의 가장 큰 인생의 목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 취직을 해서 돈을 벌고, 여가 생활을 즐기고, 지식을 쌓고, 음식을 먹는다. 이웃ㆍ친구들과 관계를 맺고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는 등 행복은 사실상 삶의 본질적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2014년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당신'은 행복한가? 지금 안녕하신가?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오래 일하는 나라로 꼽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지만, 실제론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각종 행복도 조사 결과에서 '그저 그런' 결과를 보이는가 하면, 자살률ㆍ출산율 등 사회 통계에서도 '불행한 개인들'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소득불균형 심화, 각종 복지제도 등 사회안전망의 부실, 경쟁만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 시스템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해선 노후 대책 보장ㆍ육아 부담 감소ㆍ교육 환경 개선, 범죄 줄이기 등 안전한 사회 구현, 비정규직 없애기 등 안정적 고용 환경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책 수립과 집행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소득 358배 증가, 체감 '행복'은 제자리= 한국전쟁의 참담한 폐허를 딛고 60여년 만에 한국 사회는 온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성취를 이룩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국 사회의 발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 걸쳐 세계에서 단연 돋보이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6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 경제는 1인당 국민총생산(GDP)만 해도 67달러에서 2만4000달러로 358배나 늘어나는 등 세계 최고의 압축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자동차, 반도체, 정보통신기술(ICT), 휴대폰 등 일부 분야에선 세계 최고의 기술과 높은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정치ㆍ사회 분야도 1980년대 후반 이후 군부 독재 체제를 벗어나 민간 주도의 민주주의 체제로 순조롭게 전환하고 복지제도 강화, 경제민주화가 주요 화두로 등장하는 등 '괄목상대(刮目相對)'하고 있다. 문화 분야에선 한류 스타들이 전 세계 대중 문화 시장을 주름잡는가 하면 세계적인 스포츠스타들도 잇따라 등장해 한국민들의 자존감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인들은 "당신은 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주춤한다. 지난 연말 고려대 주현우씨가 철도 파업과 관련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학내에 붙였던 대자보가 사회 전체적으로 큰 울림을 일으켰던 게 대표적 사례다. 바꿔 말해 "이런 판국에 당신인들 행복하시겠냐"는 도발적 질문에 사람들은 선뜻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고 당당히 반박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러고 보니, 나도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이웃과 사회가 불행한데 나 혼자만 행복하다고 자위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며 공감을 표시하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OECD 주요국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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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최근 국내외에서 실시된 각종 조사ㆍ통계를 보면 한국인들의 '행복도'는 그동안의 놀랄 만한 성취에 비해 그렇게 높지 않다. 유엔(UN)이 2012년 초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행복도는 전체 156개 조사 대상 국가 중 56위로 10점 만점에서 5점대 후반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무역 규모 11위의 경제 대국이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는 '그저 그런' 수준인 셈이다. UN은 당시 사회발전의 주요 지표인 GDP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국민들이 느끼는 총체적 행복의 정도를 계량화한 국민총행복(GNH)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각국의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도를 측정해 발표했었다. 한국은 가장 행복도가 낮은 국가인 아프리카 콩고, 시에라리온 등(평균 3.4점)보다는 높았지만, 가장 높은 나라들인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네덜란드 등의 7.6점보다는 훨씬 뒤졌다.

지난해 갤럽이 전 세계 57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도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52%만 그렇다고 대답해 조사 대상 국가 57개국 중 34위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 행복도가 가장 높은 국가는 뜻밖에도 남태평양의 작은 섬 국가 '피지'와 아프리카 내륙의 오지인 '나이지리아'였다. 두 국가는 89%의 국민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답변해 공동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이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국민소득이 비교적 높고 사회보장제도가 잘돼 있는 것으로 소문난 유럽의 '강소국'들(스위스·네덜란드·덴마크·아이슬란드·핀란드)과 오지의 저개발국(피지·나이지리아·가나·브라질·콜롬비아) 등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이다. 또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제도의 미비와 인종갈등, 총기 사건 등이 종종 발생하는 미국의 경우 행복하지 않다는 국민들이 20%나 돼 상위에 랭크당하는 불명예를 겪었고, 유럽발 경제 위기를 직접 겪은 루마니아나 반정부 시위ㆍ국가분쟁이 끊이지 않는 국가들(이집트·레바논·이라크·팔레스타인) 등도 상황이 비슷했다.

◆행복의 '기준'은 건강ㆍ화목한 가정ㆍ소득=
소득별 행복도

소득별 행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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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2월18일 발표한 '한국인의 의식ㆍ가치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행복한 삶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건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은 건강(10점 중 9.4점)이었다. 이어 배우자(8.9점), 자녀(8.6점), 소득이나 재산(8.6점), 직장생활(8.4점), 친구(8.1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국민의 행복 수준은 10점 만점에 6.9점으로 2008년 같은 조사와 동일했다.

이 조사 결과에선 특히 '가족'이 행복을 결정하는 주요 기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자가 있거나 가구원 수가 많을수록 행복 수준이 높게 조사됐다. 배우자가 있는 경우의 행복 지수는 7.1점, 없는 경우는 6.6점이었다. 분야별로 얼마나 실제 만족도가 높은지를 조사한 결과에선 자녀(8.4점)가 가장 높았고, 이어 배우자(8.3점), 친구(7.8점), 건강(78점), 종교생활(7.2점), 직장생활(7.0점), 소득ㆍ재산(6.6점) 등의 순이었다. 소득ㆍ재산의 경우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도는 높은 편이었지만 만족도는 가장 낮아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가 컸다. 돈이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충분히 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2001년과 비슷했다. 당시엔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묻는 결과 '건강'이 83.3%로 가장 높았으며, 이어서 가정의 행복(60.2%), 경제적 풍요(25.9%), 사회적 성공(7.8%), 자신의 능력개발(11.1%) 등으로 나타났다.

◆행복하지 못해 불안해지는 사회=
성별 행복도

성별 행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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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체감하는 행복도가 낮은 현실은 곧 삶의 질 하락과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 산하 싱크탱크인 서울연구원의 변미리 선임연구위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주요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된 'Mercer's Quality of Life'에서 서울시의 삶의 질 순위는 2012년 현재 75위에 불과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산하기관인 EIU가 지난해 조사한 '세계 주요 도시의 삶의 질' 순위에서도 서울은 최하위권인 25위에 그쳤다. 세계도시정보가 조사한 삶의 질 순위에서는 2011년 19위에서 2012년 22위로 오히려 퇴보했다. 인구 9만명당 도서관도 1곳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만명당 1곳)에 미달하고 1인당 생활권 공원면적(4.53㎡)은 세계식량농업기구(FAO)의 최저 권고기준(9.0㎡)의 절반 수준이다.

가구당 소득 대비 주택가격(PIR) 지수(10)도 비교 대상인 해외 주요 도시 중 꼴찌다. 2007년 7%대인 지역내총생산(GRDP)이 2011년 4%대로 추락하는 등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같은 기간 강력범죄 건수는 4000건 미만에서 7000건가량으로 불어났다. 서울시가 내세운 '범죄에 안전한 도시'도 무색해졌다. 전국 1위인 소비자물가 상승률(6.7%), 세계 주요 도시 중 1위인 인구 10만명당 자살 건수(25여건)를 합쳐 산정한 서울의 고통지수마저 국내외 주요 도시 중 최하위다.

사회 전체적으로 행복도를 나타내는 각종 지수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불행해진' 사람들이 이사를 자주 하는 바람에 서울의 인구 이동률은 2011년 기준 17.4%로 도쿄의 5.6%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또 연평균 자살자 수가 2006년 1742명, 2007년 2045명, 2008년 2200명, 2009년 2662명, 2010년 2668명으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출산율도 1970년 가구당 4.52명에서 2010년 1.24명까지 추락했고, 독거노인의 숫자는 2003년 9만9901명에서 2010년 현재 20만2980명으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한국인들이 행복 또는 불행한 이유=
서울시민의 부문별 행복지수

서울시민의 부문별 행복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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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 중 41.5%가 행복하다고 대답했고, 보통이다는 응답이 49.8%, 행복하지 않다는 응답이 8.7%의 순이었다.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인간 관계(39.5%), 건강(28.0%)이었다. 이어 직장ㆍ일에 대한 만족(12.2%), 여가 및 봉사(10.7%) 등의 순이었고 경제적 여건(9.3)은 생각보다 낮았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라고 대답한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어본 결과 '경제적 여건 부족'이라는 응답이 41.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여가 및 휴식 부족 19.7%, 직장과 일에 대한 불만 14.0%, 인간관계 등의 순이었다. 특히 '돈이 없어 불행하다'고 답변한 사람들은 고령자(60세 이상 53.8%), 자영업자(51.2%), 서울(46.9%), 저소득자(100만원 미만 57.1%), 저학력자(54.5%) 등에서 많았다. 경제적 문제 중에서 가장 큰 고통으로 꼽힌 것은 '노후 불안'(20.3%)였고, 높은 체감 물가(18.5%), 자녀 양육 및 교육 부담(15.8%), 일자리 불안(14.6%), 소득분배 구조 악화(12.2%), 주택시장 불안(9.6%), 가계 부채(9.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 불행의 원인은 조금씩 달랐다. 20대는 일자리 불안, 30대와 40대는 자녀 양육 및 교육 부담, 50~60대 이상은 노후 불안이 가장 많았다. 결혼 여부, 직업별, 지역별로도 약간씩 생각이 달랐다. 미혼의 경우 일자리 불안(24.7%), 높은 체감 물가(23.3%)를 꼽았지만 기혼은 노후 불안(22.1%), 자녀 양육 및 교육 부담(19.8%) 등의 순이었다. 직업별로는 학생들의 경우 '일자리 불안(38.7%)'을 가장 고통스러워 했고, 지역별로는 서울ㆍ경기ㆍ인천 등 수도권 지역에서 '주택시장 불안' 때문에 불행하다는 이들의 비율이 타 지역에 비해 높았다.

연령별 행복도

연령별 행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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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 증진 위해선 경제살리기ㆍ복지 확대"= 국민들의 행복 증진을 위해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로는 경제 살리기(30.5%), 복지서비스 확대(16.2%), 체감 물가 관리(15.1%), 범죄 사고로부터 안전한 사회(14.3%), 사교육 부담 완화(8.6%), 사회 통합 및 갈등 해소(8.4%), 부동산 시장 활성화(7.0%) 등의 답이 나왔다.

성별, 연령별, 직업별, 지역별 포인트도 약간씩 달랐다. 성별로는 여성들은 안전한 사회(17.3%)를 2번째 중요 과제로 꼽는 등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남성들은 11.3%로 네 번째로 꼽았다. 연령대별로는 20대는 복지서비스(22.5%), 안전한 사회(20.4%)를 많이 선택했지만 30대는 체감 물가 관리(19.6%), 40대는 사교육 부담 완화(16.0%), 50대 이상은 경제살리기(38%)라는 응답이 각각 다른 연령층대보다 높았다. 직업별로는 자영업자는 경제살리기(36.1%), 부동산 시장 활성화(12.9%)를, 학생들은 안전한 사회(19.5%)를 상대적으로 많이 선택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의 경우 부동산 시장 활성화(10.2%)에 대한 요구가 타 지역에 비해 높았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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