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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월드컵 아시아 쿼터, 확대만이 능사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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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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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총장 출신으로 1998년 레나르트 요한손 당시 유럽연맹 회장을 물리치고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된 제프 블래터가 취임 15년여 만에 월드컵의 지형을 뒤흔들만한 발언을 했다. 최근 발행된 FIFA 주간 매거진 기고에서 “유럽과 남미에는 지나치게 많은 본선 출전권이 할당돼 있다. FIFA 회원국(또는 협회)과 대륙별 비중을 고려할 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쿼터를 늘려야한다”고 밝혔다.

블래터 회장은 대륙별 회원국 수와 본선 출전권 분배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209개 FIFA 회원국 가운데 63개국에 불과한 유럽과 남미가 전체 월드컵 본선 출전권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5장을 가져가는 게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블래터 회장은 “조금 더 세계화된 월드컵을 보고 싶다”며 “그렇게 되려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회원국들이 조금 더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충분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발언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회원국 팬들에게 솔깃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블래터 회장의 제안이 현실화되기에는 적잖은 문제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1930년 출범한 월드컵은 출전권과 관련해 그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첫 대회는 대회 사상 유일하게 지역 예선이 없었다. 20세기 초반이라는 시기적 문제와 개최국(우루과이)이 남미였다는 지역적 문제로 출전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해 2월 28일 출전 신청 마감에서 유럽은 단 한 나라도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았다. 대회 개막(6월 13일) 두 달여를 앞두고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줄 리메 회장(FIFA 3대 회장인 줄 리메의 이름을 딴 트로피는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세 번째 우승한 브라질이 영구보존하고 있다)이 이리 저리 뛴 끝에 벨기에, 루마니아, 프랑스, 유고슬라비아가 출전을 결정했고, 이 나라 선수들은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바다(대서양) 건너서’ 우루과이에 도착했다. 나머지 출전국은 모두 남미 또는 북중미 나라였다. 13개 나라가 출전한 가운데 4조의 미국은 벨기에와 파라과이를 각각 3대 0으로 누르고 조 1위로 4강에 올랐다. 아르헨티나에 1대 6으로 져 3위를 차지한 게 첫 대회의 이변이었다. 당시에는 3위 결정전이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1934년 제2회 대회에는 32개국이 출전을 신청, 12개 조로 나눠 예선을 거쳤다. 본선은 16개 나라가 치렀다. 12조는 아시아·아프리카에 배정됐는데 터키의 기권으로 이집트가 영국 위임 통치령 팔레스타인을 7대 1과 4대 1로 가볍게 제치고 본선에 나섰다. 이집트,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비유럽 3개국은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8강전 뒤로는 유럽의 잔치였다. 결승에선 이탈리아가 체코슬로바키아를 2대 1로 물리쳤고 3위 결정전에선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3대 2로 꺾었다. 실질적으로 출전한 나라는 없지만 제2회 대회부터 아시아 나라에도 본선에 나설 기회가 주어졌다.

1938년 제3회 프랑스 대회에서 아프리카는 유럽 조에 포함됐고 아시아는 12조로 별도 배정을 받았는데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기권으로 네덜란드령 동인도(현 인도네시아)가 예선 없이 본선에 나섰다. 일본은 이 대회를 앞두고 지역 예선에 대비, 1936년 11월 국가 대표 후보를 소집했다. 당시 명단에는 김용식(1936년 베를린 올림픽 출전)과 이유형, 배종호, 박규정 등 4명의 조선인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1950년 제4회 브라질 대회에선 예선 10조가 아시아 조였는데 출전 신청을 했던 4개국 가운데 버마(현 미얀마), 필리핀, 인도네시아의 기권으로 인도가 자동적으로 본선 티켓을 차지했다. 그러나 브라질까지 가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인도 역시 출전을 포기했다. FIFA가 맨발로 공을 차는 선수들의 출전을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어 출전을 포기했다는 일설도 있다.

1954년 제5회 스위스 대회에는 축구 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아시아를 대표해 한국이 출전했다. 한국이 행정 미숙으로 예선에 나서지 못한 1958년 제6회 스웨덴 대회에는 아시아·아프리카에 0.5장이 배정됐다. 정치적 문제 등 복잡한 경로 끝에 이스라엘이 유럽의 웨일즈와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펼쳤으나 0대 2로 두 차례 패해 이 대회에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는 출전하지 못했다.

1962년 제7회 월드컵은 칠레에서 열렸는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0.5장의 티켓이 각각 배정됐다. 아시아 지역 예선에는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가 출전하기로 돼 있었으나 인도네시아가 중도 기권했다. 한국은 일본에 2승(2대 1, 2대 0)을 거뒀다. 당시 아시아 지역 예선 승자는 유럽과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다. 한국은 칠레 월드컵 예선이 시작되기 전인 1960년 10월 제2회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이스라엘을 3대 0으로 물리치는 등 3승을 거둬 대회 2연속 우승에 성공, 아시아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강호 유고슬라비아(1948년, 1952년, 1956년 올림픽 은메달, 1960년 올림픽 금메달)와 치른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선 전력 차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1년 10월 8일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원정 경기에서 1대 5로 대패했다. 김포-도쿄-타이페이-홍콩-테헤란-앙카라-이스탄불-로마-베오그라드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당시 대표 선수들의 유럽 원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있다. 11월 26일 효창운동장에서 벌어진 경기에서도 1대 3으로 져 한국은 본선 출전의 꿈을 접었다. 아프리카 1위의 모로코도 스페인과 치른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0대 1과 2대 3으로 각각 져 본선에 나서지 못했다.

아시아 나라로는 처음으로 북한이 1라운드를 통과해 8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킨 1966년 잉글랜드 대회에서는 아시아·아프리카·오세아니아에 1장의 출전권이 배정됐다. 나이지리아, 수단 등 아프리카 예선에 출전을 신청한 15개 나라가 몽땅 기권해 북한은 1965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벌어진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호주를 6대 1, 3대 1로 연파하고 본선 티켓을 거머쥐었다. 한국은 이 예선에 출전하지 않았다.

이런 시기를 거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는 아시아연맹에서 한국, 이란, 호주, 일본 등 4개국(요르단이 우루과이와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이기면 5개국)이, 아프리카에서 5개국(11월 확정)이 출전한다. 본선 출전국이 16개국에서 24개국을 거쳐 32개국이 되는 과정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꽤 많은 출전 티켓을 확보했다.

이런 가운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본선 출전권을 늘리는 건 월드컵의 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내년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 9개 조에서 2위 또는 3위를 한 세르비아와 덴마크,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스라엘, 슬로바키아, 몬테네그로, 핀란드 등은 유럽 지역 플레이오프에도 나서지 못했다. 폴란드와 터키, 불가리아 등은 3위 밖이었다. 이들 나라들은 아시아나 아프리카를 대표해 나오는 나라들과의 경기에서 얼마든지 앞설 수 있는 경기력을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한국, 일본 정도가 월드컵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 2002년 한일 대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일에 0대 8, 중국이 브라질에 0대 4,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서 북한이 포르투갈에 0대 7로 진 경기들이 아시아 축구의 경기력을 대변한다. 수준에 비해 본선 티켓이 적다고 보는 유럽과 남미, 회원국에 수에 견줘 볼 때 본선 출전권이 적다고 생각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제대로 실력을 겨뤄 월드컵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월드컵 이상으로 대회 규모의 비대화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편 대륙별 안배도 고려해야 하는 올림픽 남자 농구의 사례를 보자.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농구에는 12개 나라가 출전했다. 개최국 영국과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국, 아프리카(1)·미주(2)·오세아니아(1)·유럽(2)·아시아(1) 선수권대회 1위 또는 2위 나라 그리고 세계 예선(3) 통과국 등이었다. 세계 예선에는 아시아의 경우 2011년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국 중국이 런던에 직행했고 2위 요르단과 3위 한국이 참가했다. 이런 방식으로 모인 아프리카(2)·미주(3)·유럽(4)·오세아니아(1) 등의 12개국은 FIBA 랭킹과 대륙별 안배에 따라 3개조로 나뉘었다. 각 조 1, 2위 나라가 8강 녹다운 방식으로 경기를 치러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나이지리아가 런던행 막차에 올랐다.

한국은 C조에서 러시아에 56대 91, 도미니카공화국에 85대 95로 각각 져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뒤 4회 연속 올림픽에 나서지 못했다. 이 방식에 3을 곱하면 월드컵 규모가 된다. 전 대회 우승국을 자동 출전 대상에서 빼는 등 세세한 부분은 조금씩 조정하면 된다. 이 사례는 블래터 회장이 계획하는 월드컵 출전국 선정 방식 변화에 참고가 될 만하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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