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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100퍼센트] <골든타임>, 서른 성장통에 처방전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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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100퍼센트] <골든타임>, 서른 성장통에 처방전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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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측하고 장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는데, 왜 하필 지금 내 앞에 이런 환자가 나타 났는가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올 텐데, 그 때는 어쩔 겁니까?” MBC <골든타임>의 세중병원 인턴 이민우(이선균)는 최인혁(이성민)이 면접에서 던진 질문을 자주 상기한다. 그는 인턴을 신청하지 않은 의사, 환자 대신 CT 화면만 보던 의사였다. 생명이 위급한 아이가 죽어가는 예측하고 장악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은 뒤에야, 이민우는 인턴이 된다. 끝까지 피하고 싶던 일이 내 앞에 왔다. 그 때 <골든타임>은 최인혁의 입을 빌어 말한다. 도망치지 말라고. 그 속으로 들어가 답을 찾으라고.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에서 “요즘 세상에 ‘돈도 없지만 취직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은 대체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라고 물었다. “빠져 나갈 길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사회”라고 덧붙이면서. 이민우는 “의대 갈래, 법대 갈래”라는 부모의 말에 의대를 택했다. 세중병원은 인턴이 의학을 배우려면 반드시 거쳐야할 대형 병원이지만 과장에게 이견을 달면 뺨을 맞는 조직 사회의 짐도 얹는다. 부모, 의사, 대학병원. 이민우는 과연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을까. 이민우가 인턴이 되길 거부하던 때는 그나마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던 인생의 인턴기간 아니었을까. <골든타임>은 다 자라서도 어른이 못된 이민우에게만 책임을 묻지 않는다. 대신 최인혁이라는 멘토를 주고, 세중병원이 최인혁을 품을 수 있는 곳이 돼야 이민우도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선균이 만들어낸 청춘의 두 얼굴


이선균은 <파스타>에서는 레스토랑을 책임져야 했고, 세중병원에서는 환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이선균은 <파스타>에서는 레스토랑을 책임져야 했고, 세중병원에서는 환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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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타임>은 MBC <파스타>를 연출한 권석장 감독과 MBC <베스트극장>의 ‘태릉선수촌’, <커피프린스 1호점>, <트리플>의 이윤정 감독이 공동연출한다. 그들의 대표작은 곧 이선균의 필모그래피다. <골든타임>은 두 사람이 이선균을 통해 마무리하는 어떤 청춘의 기록이다. ‘태릉선수촌’의 이선균은 재벌 2세는 아니었지만 가장 뛰어난 수영 선수였고,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이선균은 운명적인 사랑을 몰고 오지는 않아도 여성에게 전화로 부드럽게 노래했었다. 이선균은 일상의 리얼리티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남자였고, 매력은 또래보다 늘 여유 있는 어른 같은 태도에서 나왔다. 언제나 여유 있게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과 격려를 하던 남자. 또는 그만큼 또래보다 속 깊고 똑똑한 선배. 이선균은 안정된 저음과 명확한 표정으로 이런 캐릭터를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태릉선수촌’은 이동경이 선수촌을 벗어나 새 직장을 찾는 것에서 마무리 된다. 선수촌이나 커피숍 같은 청춘의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권석장 감독은 이선균에게 울타리 밖의 세상을 만나게 했다. <파스타>의 셰프 최현욱은 레스토랑 경영에 대해 책임져야 했고, 세중병원의 선배들은 그에게 환자의 삶과 죽음, 책임에 대한 선택을 요구한다.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은 없다. 태릉선수촌의 이동경이 세중병원의 이민우가 되는 사이 치열한 세상 바깥에서 그들을 지켜줄 공간과 기회는 사라졌다. 이민우는 더 이상 이동경처럼 또래들과 함께하며 더 여유 있고 속 깊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그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은 미국 드라마 자막을 작성하던 그 작은 방 뿐이다. 방 바깥의 세상에서 그는 인턴일 뿐이고, 직장은 그에게 조직의 룰을 따를 것을 강요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보이는 길밖에도 세상은 있어”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는 30대 초반에도 안정된 직장을 얻기도 어렵고, 직장에서 원하는 일을 하기는 더 어려운 세상에서 산다. 유능한 셰프이자 여전히 풋풋한 연애를 할 수 있던 최현욱은 다른 길이 없는 세상에서 타협할 수 있는 마지막 판타지였다. 최현욱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방에만 있을 것인가, 온갖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 속으로 갈 것인가.

이상한 세상의 이상한 청춘들


지금 우리는 이민우처럼 모두가 어른이 되기 위한 인턴 기간이 필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는 이민우처럼 모두가 어른이 되기 위한 인턴 기간이 필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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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이선균과 <골든타임>은 청춘을 재정의한다. ‘태릉선수촌’에서 또랑또랑하던 이동경의 목소리는 <골든타임>에서 말끝을 흐리고, 여유롭고 묵직한 저음은 정신없이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인턴의 하이톤으로 바뀌었다. 확신을 잃고 지쳐 주저앉은 이민우의 초점없는 얼굴. 이선균은 그렇게 다시 우리 시대의 현실적인 한 세대의 얼굴이 됐다. 서른은 훌쩍 넘었다. 하지만 어른은 되지 못했다. 어른이 되고 싶지도 않지만, 어른이 돼야 살아갈 수 있다. 이 이상한 청춘, 또는 청춘을 지나 어른이 되길 기다리는 인턴들. 최인혁 같은 어른을 만날 수 없다면, 그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예측하고 장악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날 것이다. 그 때 이 이상한 청춘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방향도 목적지도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걸을 수 밖에 없는 길. 다만 최인혁이 이민우에게 건넨 한마디는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 “앞으로 이 환자를 보면서 위기가 올 때마다 끊임없이 불안하고 초조해질 것이다. 환자에게 투약을 하고 검사를 하고 관을 꽂고 그러면서 나는 이 환자에게 무엇인가 하고 있구나 위안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그것이 과연 환자를 위한 것인지 불안을 달래기 위한 조치인지. 이 환자는 지금 안정이 필요하다.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거. 그것도 중요한 디시젼이다. 지금부터 필요한 건 인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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