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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충무로 인쇄 골목, 기계소리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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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홍보물량 급감, 선거 특수도 사라져

▲ 한 직원이 오토바이에 걸터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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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정민 기자] "일이 없으니까 놀고 있지, 이 사람아. 바쁘면 이럴 틈이나 있겠어?"

21일 오후 4시에 찾은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 바쁘게 돌아가는 기계소리가 들려야 할 인쇄소에서는 직원들의 한숨소리만 들려왔다. 오락가락 비가 내리는 가운데 동료와 담배를 피고 있는 김인석(가명ㆍ52)씨에게 '일은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10년째 이 골목에서 충무로를 지켰다는 김 씨는 "지금과 같이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인쇄골목에는 김 씨와 같이 일손을 놓은 채 담배만 피워물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경기불황의 여파가 충무로에도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이다.
우일인쇄공업에서 기계관리를 맡고 있는 직원 최인호(36)씨는 "윤전기 6대 중 절반만 돌아가고 있어서 요새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우일인쇄공업이 최근 주문받은 물량은 지난주 광고 전단지로 들어가는 1500매가 전부다. 최 씨는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이렇게 어려운 건 처음이다. 지난해에 비해 주문량이 30% 감소했다"고 털어놨다.

다른 업체들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쇄업체 대표는 "업계에서 소위 잘 나간다던 업체들도 인원감축을 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우리도 어쩔 수없이 인원 감축에 들어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 업체의 직원 대여섯명은 일손을 놓은 채 가게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양산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쇄업계 불황의 이유는 결국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때문이란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대기업에서 단가를 마음대로 조정하면 중소업체들은 중간에서 이도저도 못하게 된다"고 항변했다.

박정태 웰던애드 총괄본부장도 "대기업의 횡포에 중소기업들만 죽어나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쇄업체들이 생산 단가도 조절할 수 없고 납품단가도 조절할 수 없어서 인쇄소들이 갑, 을 상황에서 모두 피해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극심한 불황에 대기업들마저 홍보비를 줄이고 있어, 향후 인쇄업계 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인쇄소들이 장사가 안 되면서 인쇄용지 유통업체들도 된서리를 맞았다. 인쇄골목 중간에 위치한 경일종합지류에서 지류를 납품하는 김인수(29)씨는 "예전에 비해 나가는(팔리는) 물량이 현저히 줄었다"며 "대략 20~30%는 감소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인근 인화지류 김 모씨도 이에 동조했다. 그는 "지난해에 비해 형편없는 수준이다. 약 30% 정도 떨어졌다. 이러다가 문 닫겠다"며 말을 마쳤다.

전통적으로 선거시즌이 돌아오면 인쇄업계가 호황을 누리지만 올해는 예외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거 인쇄물에 둔 제한 때문에 인쇄 물량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 인쇄업자는 "선거 특수 없어진 지가 10년째다. 예전에는 후보가 마음대로 인쇄물을 찍어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해진 수량만큼만 제작이 가능해 인쇄업체들에게 일거리가 생기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정민 기자 ljm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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