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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더운데 누가 시장와? 다들 마트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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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더운데 누가 시장와? 다들 마트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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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소문난 성주참외 10개 5000원이요. 5000원"

22일 서울 청량리 청과물 도매시장. 30도에 육박하는 푹푹 찌는 날씨에 상인들은 더위에 지쳐 힘없이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가격표에는 매직으로 쭉쭉 두 줄이 그어져 있고 그 옆에 3000~4000원을 낮춘 가격이 새로 적혀 있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손님은 없는데 혹시나 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 선풍기는 손님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워낙 장사가 안 되다 보니 상인들은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팔고 보자는 식이다. 2개 1000원인 키위값은 6개 1000원으로 뚝 떨어졌다. 키위를 팔던 상인은 “날도 더운데 냉장고까지 망가져 장사 밑지게 생겼다”며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얼른 팔아버릴 생각”이라고 했다.

마트처럼 냉방기를 가동할 수도 없는 전통시장, 더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 날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부채질을 해가며 물건을 둘러보고 있었다. 사과와 참외를 파는 서부상회 주인은 “날씨가 더워 손님이 줄어든 것은 사실” 이라며 “이렇게 날이 더운데 누가 장보러 재래시장에 오겠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파프리카를 파는 상인 김성회씨는 “젊은 사람들은 냄새나고 더운 재래시장 대신 시원하고 쾌적한 마트로 장보러 가는 것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전거를 끌고 재래시장을 찾은 주부 한상희(58·전농동) 씨는 “젊은 사람들은 돈 생각 안하고 장을 보기 때문에 무조건 마트로 가는 것”이라며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우리도 오기 힘들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같은 시각 노량진수산시장.
회 떠 달라는 손님이 없어 도마 위가 반들반들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불황까지 겹쳐 개점휴업 상태에 놓인 상인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겨울철이면 하루 1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활기를 띄었던 시장에는 썰렁함이 감돌았다. 간간히 손님이 눈에 띄었지만 다 합쳐봐야 스무 명이 안 됐다.

김기림 한라수산 사장은 "비브리 균 때문에 여름에 회 먹으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장사가 안된다"면서 "평일엔 100만 원, 주말엔 300만~400만 원의 매출은 거뜬히 올렸는데 지금은 매출이 반으로 뚝 떨어졌다.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만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수산시장 2층에 즐비하게 늘어선 횟집들도 손님 잡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상인들은 횟집을 찾는 손님들이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아는 눈치였다.

진남횟집 직원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대뜸 “우리 집은 살균처리가 잘 된 생선만 취급한다”며 횟감의 신선함을 강조했다. 수산시장에서 바로 횟감을 공수해오기 때문에 믿고 먹어도 된다고 꼬드겼다.

그나마 전남횟집은 이런 적극적인 홍보 때문인지 두 테이블에 손님이 차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횟집들은 텅텅 비어 있거나 가격을 문의하는 손님들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산시장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최복수산의 최주영 사장은 이달초 수족관 안에 살균 소독해주는 장치를 달았다. 이로 인해 수족관 안 물의 온도는 항상 적정온도 13도를 유지한다. 물 수질 관리도 알아서 척척 해준다. 덕분에 ‘Clean 살균 소독 모범업소 2호점’으로 선정됐다.

최 사장은 13도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온도계를 손으로 가리키며 “생선이 살기 좋은 온도”라고 했다. 이어 더위 때문에 물의 온도가 높아져 생선의 싱싱도가 떨어질 일은 없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이 모범업소 2호점에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 큰 맘 먹고 소독장치까지 달았지만,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더위 탓에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의 얼굴에는 주름이 더욱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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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영 기자 ar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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