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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인가, 생시인가"..다산-초의 시첩 '세상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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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외,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 종이에 먹과 수묵, 28.5×120cm, 1818년

다산 정약용 외,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 종이에 먹과 수묵, 28.5×120cm, 18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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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머묾 유유해라 꿈인가 생시인가
고향이야 있다 해도 돌아감 구치 않네.
세상 일 탈도 많아 두 눈이 휘둥그레
저서를 그만 두니 한 몸이 한가롭다.
골이 깊어 구름 나무 어루만짐 사랑하니
장기(?氣)에도 눈 덮인 산 기쁘게 바라본다.
봄 소리가 섣달 술로 이어졌다 말을 하니
흰 갈매기 푸른 물결 사이로 내려앉네.
(다산)

부엌과 솔길은 고요해 상관 않고
목 마르고 주린 사슴 드나들게 허락하네.
뜻 얻었다 어이해 세상 위해 쓰이리오
장차 마음 이끌고서 구름을 벗 삼으리.
산 앵도 잎을 펴서 붉은 해를 가리우고
냇가 대 가지 치자 푸른 산에 이슬 듣네.
한 자락 맑은 생각 그 뉘와 얘기할까
흰 구름 속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을.
(초의)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題草衣洵所藏石屋詩帖)'에 나오는 대목이다. 산속에 은거해 안빈낙도의 삶을 그려낸 다산과 초의의 시가 나란히 쓰여있다. 이 시첩 첫 부분은 다산이 제자 초의가 소장한 원나라 승려 석옥의 시첩을 직접 해설한 글이다. 이어 석옥의 시 '산거잡영'(山居雜詠)을 다산이 친필로 옮겨 적었다. 계속해 다산과 초의가 이를 차운해 나란히 시를 지어 글씨로 옮겼다.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청빈한 자연에서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석옥, 다산, 초의의 시가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 작품이 쓰일 당시 대둔사 승려들에게 석옥의 산거잡영에 차운시를 쓰는 것은 일대 유행이었다. 해남 대둔사는 초의선사가 기거하던 곳으로 우리나라 차(茶)문화의 성지로 꼽힌다. 다산과 초의의 만남도 이곳에서 비롯됐다. 초의보다 스물 네살이 많은 다산은 당대 최고의 진보적 유학자였다. 초의는 그런 그에게 경서와 시문을 배우며 불교를 실사구시의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유불의 상통이다. 이 둘의 인격적 교류는 장장 9년간 이어진다.

그들의 우정과 문학의 향기가 이 시첩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원래 시첩에는 석옥의 산거잡영과 다산, 초의의 시가 각각 24수 적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 일부인 석옥의 3수, 다산의 2수, 초의의 2수만 실려 있다. 첩(帖)으로 돼 있던 것도 액자로 개장했다. 빼곡한 글씨 양 옆으로는 분란도와 죽석도가 그려져 있다. 이는 다산이 세상을 떠난 후인 1843년 초의와 오랜 기간 교유를 나눴던 위당 신관호가 그린 것이다. 신관호는 17세기 조선의 전라우수사였다.
정민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 작품에 대해 "다산의 제문을 보면 선종의 정통성이 해남 대둔사에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보인다"면서 "차생활과 다산의 초당 생활을 보여주는 내용도 들어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크고, 불교사 흐름에 대한 다산의 이해를 알 수 있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평가했다.

이 시첩은 1960년대 재무부장관이었던 고 홍승희 전 장관이 소장했던 것이다. 홍 전 장관은 서화, 도자기, 글씨 등 1000점 이상의 미술품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사후 그가 소장했던 작품들은 대학박물관에 기증되거나 정리돼 시장에 다시 등장하게 됐다. 이번 작품도 홍 전 장관이 소장하다 그의 비서를 통해 서 너명의 주인을 거쳐 다시 경매에 붙여지게 됐다.

경매 관계자에 따르면 작품가격은 지난 1980년대 3000만원 수준이었다. 현재 추정가는 3억~5억원.

이번 경매는 마이아트옥션이 오는 31일 오후 5시 서울 관훈동 공아트스페이스 지하 3층 마이아트옥션하우스에서 진행한다.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외에 '곽분양행락도8곡병', '삼국지연의도 8곡병', '정조대왕어찰첩'등 고서화, 근현대 서화, 도자, 목기, 공예품 등 175점이 출품된다. 곽분양행락도는 중국 당나라 때 명장으로 '분양' 지역 왕에 봉해졌던 '곽자의'의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그린 궁궐그림이다. (02)735-9938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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