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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옆구리가 터져도, 꽃보다 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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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4월의 어느 날 여의도. 평일인데도 한창인 벚꽃과 봄날을 느끼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고 국회 의사당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라 안팎 시끄러운 일들로 의사당 내부는 적막하고 싸늘한 느낌이 들었지만 외부는 봄을 찾아온 객들의 온기로 더없이 따뜻했다. 점심시간 곳곳에서는 정성스레 싸온 도시락으로 봄의 정취를 더했다.

꽃, 봄, 소풍 그리고 도시락. 4월이 아름다울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들이다. 봄소풍에 빠질 수 없는 요소가 있다면 바로 김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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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이라면 소풍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김밥이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소풍=김밥'의 공식이 당연스러운 일이다.
어린 시절 소풍 갈 때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준비물은 김밥이었고 그 김밥을 먹는 점심시간은 소풍의 백미였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각자의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은 시상식장에서 수상자를 발표할 때처럼 떨리곤 했다. 소풍날 김밥은 친구들 사이의 은근한 경쟁심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수업을 땡땡이 치고 고궁으로 나들이를 가면서 가장 먼저 챙긴 것은 학교앞 김밥집의 김밥이었다. 할머니께서 조그맣게 하시던 김밥집이었는데 그집 김밥은 별다른 재료없이 초절임을 한 무채를 잔뜩 넣은 것이었다. 새콤달콤한 그 맛이 어찌나 좋았는지 아직도 그 김밥을 잊지 못한다. 외국에서 지내던 시절에도 가장 생각나던 것은 소풍 때마다 나를 우쭐하게 만들어주었던 어머니의 김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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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김밥을 먹게 됐을까. 김밥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의 김초밥(노리마키)에서 유래됐다는 설과 한국에서 김을 먹기 시작한 역사적 기록을 내세워 한국에서 먼저 먹기 시작한 음식이란 설이다. 어느 설이 맞던 간에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김밥은 우리만의 것이다. 일본의 김초밥은 식초, 설탕으로 만든 배합초를 넣어 시큼하면서도 달달하지만 우리 김밥은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해 고소한 향과 맛이 난다.

김밥은 팔색조같다. 각종 재료가 어우러져 시각적으로도 그렇지만 사람들의 취향과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 또한 그렇다. 휴대의 간편성이라는 필요에 맞게 도시락의 대표적인 메뉴로 자리잡은 것처럼 김밥처럼 사람들의 필요에 딱 맞게 변화하는 음식도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김밥인 충무김밥이 그 대표적인 예다. 김에 맨밥만을 쌓은 김밥과 새콤달콤한 무김치, 매콤한 쭈꾸미무침을 함께 곁들여 먹는 충무김밥은 통영의 강한 햇빛에 일반 김밥이 쉽게 상하자 밥과 속재료를 분리해 팔면서 시작된 것이라 한다. 당시 통영은 부산과 여수, 거제를 오가는 배들이 거치는 곳으로 배들이 들어올 때마다 행상들은 충무김밥을 팔곤 했는데 이것이 인기를 끌면서 명물로 자리를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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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직장인들의 든든한 아침식사로 자리잡은 삼각김밥 역시 오래 보관해도 눅눅해지지 않는 김밥을 찾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김밥의 양쪽 끝이 더 맛있다고 해서 나온 꼬투리 김밥도 있다. 캘리포니아 롤은 캘리포니아에 살던 일본인들이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현지인들의 입맛에 잘 맞는 아보카도, 날치알, 연어, 크림치즈 등으로 초밥을 만들어 먹으면서 나온 것이다. 이밖에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치즈김밥, 참치김밥, 누드김밥, 계란말이김밥, 샐러드김밥 등 김밥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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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은 개성적이면서도 조화롭다. 각종 재료가 들어가 각자의 개성적인 맛을 내는 동시에 그 개성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해 아주 조화로운 맛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동서양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김치와 치즈도 김으로 말면 너무나 잘 어울리고 따로 먹으면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햄과 단무지도 김밥 속에서는 단짝이 된다. 그것이 바로 김밥의 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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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날씨에 주변이 형형색색 곱게 물들어가는 한편 남북, 여야, 노사 각종 대립으로 마음은 왠지 서늘한 요즘 그런 김밥의 마술이 간절해진다.



송화정 기자 yeekin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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