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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아카데미]'전형적 여성' 탈피한 독보적 행보, 최고 영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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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여우조연상 트로피 품은 '미나리' 윤여정
"전형적인 할머니, 전형적인 엄마. 나 그런 거 연기하기 싫어요"
관습과 거리 둔 삶과 연기, 왕성한 활동으로…여배우 향한 한국 사회 시선 변모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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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링 중계방송에 푹 빠진 순자(윤여정). 데이비드(앨런 김)는 그런 외할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 "할머니 같은 게 뭔데?" "쿠키도 만들고, 나쁜 말도 안 하고, 남자 팬티도 안 입고…." 순자는 주눅이 좋게 얼렁뚱땅 넘긴다. "이리 와. 이리 와. 어이구, 프리티 보이(예쁜 내 새끼). 프리티 보이."


진짜 같지 않은 할머니에 미국 할리우드가 매료됐다. 오스카 트로피를 건네기 전부터 사랑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어린 시절 피했던 '할머니 냄새'를 그리워하며…. 뿌리는 리 아이작 정 감독의 외할머니다. 한국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 엄마를 키웠다. 어렴풋한 초록빛 기억에 미나리가 있었다. 할머니가 키운 한국 채소 가운데 가장 잘 자랐다고. 농장 화재 등으로 우여곡절을 겪던 가족에게 희망이 돼줬단다. 정 감독은 할머니의 사랑이 깃든 덕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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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은 정 감독의 기억대로 재현하지 않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했다. 까칠한 말투와 익살스러운 얼굴 뒤로 자상하고 따뜻한 기운을 내뿜었다. '계춘할망(2016)'의 계춘, '그것만이 내 세상(2017)'의 주인숙,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18)'의 순자 등에서 이미 보여준 '윤여정 표' 연기다. 해외 관객에게 신선한 설득력을 부여하며 순수한 사랑을 가리켰다. 정 감독은 "처음에는 고약한 말로 아이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결국 사랑을 느끼고 좋아하게 만드는 정직하고 서슴없는 역할에 딱 맞았다"라고 말했다.


윤여정 특유의 연기는 부조화로 변주된다. 사위 제이콥(스티븐 연)과 딸 모니카(한예리)의 다툼으로 조성된 냉랭한 분위기를 단번에 환기하는 동시에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을 심화해 긴장을 유발한다. 영화 속의 미나리는 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순자는 미나리를 시냇가에 심고 키우며 영화의 주제의식도 드러낸다. 윤여정은 기이한 연민과 초월적 기운을 동시에 드러낸다. 화재로 모든 것이 타버리는 창고 앞에서 시들어버릴 듯한 얼굴로 가족들의 새로운 시작을 끌어낸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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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중견 여배우에게선 보기 드문 표현이다. 동료 여배우들이 평범한 어머니 역할을 받아들이며 안주할 때 독불장군처럼 변화무쌍한 캐릭터들을 고수했다. '바람난 가족(2003)'에서 뒤늦게 섹스에 눈을 뜬 시어머니 홍병한, '하녀(2010)'에서 신입 보모를 감시하는 터줏대감 하녀 병식,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박카스 할머니' 소영 등이다. 재벌가 안주인 백금옥을 연기한 '돈의 맛(2012)'에서는 젊은 비서 주영작(김강우)과 정사를 벌인 다음 날 양팔을 치뻗으며 기지개를 켠다. "아이고, 상쾌해."

윤여정은 "전형적인 할머니, 전형적인 엄마. 나 그런 거 연기하기 싫어요. 내 필생의 목적이에요"라고 말했다. 관습과 거리를 둔 삶과 연기는 상업영화는 물론 드라마, 독립영화를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으로 이어졌다. '미나리'도 그 자장 안에 있다. 문화, 민족,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에 짚은 포용력과 든든한 토양을 제공한다. 선명한 발자취는 이미 여배우를 향한 한국 사회의 시선을 변모시킨 지 오래다. 오스카 트로피는 그에 대한 적절한 보답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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