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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코로나 19 대처와 연대세(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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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코로나 19 대처와 연대세(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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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유감입니다만, 선생은 이 고장 사람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말입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 등장하는 대사다. 취재차 파리에서 오랑이라는 작은 도시에 왔다가 페스트가 만연하는 바람에 발이 묶인 신문기자 랑베르에게 의사인 리유가 한 말이다.


리유는 페스트를 '신의 징벌'이라고 설교한 파늘루 신부에게는 이렇게 항변한다.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거부하겠다.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다. 즉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다."

소설 속 페스트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대체하고 읽으면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과 대부분 맞아떨어진다. 카뮈는 소설을 통해 시민의 연대의식을 강조한다. 서로 손을 잡는 연대(solidarite)를 통해 나약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며 질병과 불의에 저항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과학과 의학의 업적 및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통해 자신을 마냥 위대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정체를 모르는 낯선 바이러스 하나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감염과 죽음의 공포 앞에 인간이 얼마나 유한하고 허약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역경과 시련 극복은 구호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많은 사람의 연대와 실천이 요구된다. 카뮈가 소설 '페스트'를 통해 강조한 연대의식은 프랑스 세법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프랑스는 소득세 부과에 얹어 '연대세(RSA)'를 거두고 국민의 연대의식을 고취하고 실천하는 데 필요한 재원으로 사용한다.

특히 초고소득자(연간 소득 250만유로 이상)에게는 분담금(Contribution) 형태로 4%를 추가로 징수해 사회적 약자 보호에 쓴다(프랑스 조세일반법 제223 sexies조). 프랑스 대혁명 때 공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 제13조는 공권력의 유지 또는 행정지출을 위한 공동의 조세가 필요하다고 명시함으로써 연대세의 자발적 납부 정신의 토대를 마련했다. 더불어 사는 선진국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프랑스와 달리 미국에는 기부금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가 코로나19 퇴치에 써달라며 1억달러를 기부했다. 우리나라에서 회삿돈이 아닌 개인 호주머니에서 기부한 재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기부금에는 인색하면서 세금은 깎아달라고 요구하는 부자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도 경천애인(敬天愛人ㆍ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함)이라는 훌륭한 덕목이 있지만 구체적 실천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페스트로 희생당한 파늘르 신부가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라고 설교하지 않을까 싶다.


곧 코로나19 대책용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편성된다. 증세가 없는 한 재정적자는 심화하고 그만큼 젊은이들이 짊어져야 할 부채는 늘어날 것이다. 국가와 청년 세대의 미래를 망치는 일인데도 정치권과 언론은 귀를 막고 있다.


안타깝지만 세균과 총탄은 자비가 없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희생양을 찾아간다. 질병 치료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비전문가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 서로 격려하고 배려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도 의사 리유처럼 성실성과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포진해 있다. 그들을 믿고 응원하자. 그래야 진정 선진국으로 올라서고 젊은이들이 희망을 본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저력이 있는 대한민국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런 정도의 시련을 이겨내고도 남을 역량이 충분하다. 코로나19에 한마음으로 맞서자.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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