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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산책] 수천 번 마음을 긁어 탄생한 엄마

최종수정 2022.01.27 09:20 기사입력 2022.01.27 09:20

'Life 삶' 문성식 작가 개인전
'유화 드로잉' 기법 발전시켜
연필로 긁는 방식으로 표현
"날 것 그대로…내 성격과 닮아"
박수근·이중섭 거장 재해석
"여러 작가 참조하지만 답은 나"

문성식의 '엄마, 엄마, 엄마'(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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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좋지만 가끔 싫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한없이 애처롭기만 한 엄마는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셨다. 그런 엄마에 대한 제 마음을 그려보고 싶었다."


전시장을 걸으며 자신의 작품세계를 차분히 설명하던 문성식 작가(41)가 ‘엄마, 엄마, 엄마’(2022) 작품 앞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엄마를 그린 자화상이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는 이 그림을 그리게 된 일화를 들려줬다. 엄마 칠순 때 모처럼 식사하는 자리에서 다퉜던 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연필을 들었다고 했다. 그의 손길이 적어도 수천 번은 닿았을 정도로 섬세하게 표현된 머리카락과 얼굴 주름에서 엄마를 향한 작가의 미안함과 사랑이 동시에 전해졌다.

경북 김천 출신인 문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에서 수학했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하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배우 고소영 등 유명 연예인들이 그의 작품을 찾았다. 지난해엔 방탄소년단(BTS) RM의 부탁으로 그의 데뷔 8주년 자작곡 ‘바이시클(Bicycle)’의 앨범커버를 그리기도 했다.

문성식 작가가 그의 작품 '그냥 삶'(2021~2022)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출처=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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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작가는 최근 자신의 개인전 ‘Life 삶’을 열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오는 2월28일까지 전시한다. 2011년과 2019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선보이는 문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가 살아온 일상의 장면들과 주변 동·식물 등 100여점의 작품이 걸렸다. 그가 2019년부터 진행해온 대형 장미와 관련한 연작인 ‘그냥 삶’의 신작도 공개된다. 지난해 전남 수묵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그저 그런 풍경: 땅의 모습’ 연작 중 10여점도 전시됐다.


문 작가는 ‘유화 드로잉’이라는 독특한 기법을 자신만의 회화언어로 발전시켰다. 캔버스에 ‘피버 페이스트’라는 일종의 종이죽과 젯소, 유화를 바른 후 이를 연필로 긁는 방식이다. 그가 ‘긁기’를 선호하는 것은 장식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행위라서다. 고대 동굴벽화에서 목격되듯 인류의 그리는 행위는 원래 긁기였다. 긁는 행위에서 중요한 건 붓이나 물감 따위가 아닌 작가 자신이다. 문 작가는 "긁는 행위를 통해 오리지널함을 표현하고 싶었다"면서 "연필이라는 재료를 택한 것도 가장 기본적인 회화 도구인 데다 꾸밈없는 제 성격과도 닮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성식의 '정원과 가족'(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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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를 잔뜩 머금은 캔버스는 그에게 실존의 장 그 자체다. 그가 반 젤리 상태인 유화의 저항을 헤치고 한 획, 두 획 연필을 휘두르면 모든 궤적은 성실히 기록된다. 이런 기록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도 닮았다. 새하얀 캔버스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삶에서 우연과 필연이라는 굴레를 뚫고 자신만의 선택을 이어가는 게 삶이니까. 문 작가는 "유화 특유의 물성이 내가 휘둘렀던 모든 알리바이를 다 고착시킨다"면서 "완성된 그림을 바라보면 내가 이 캔버스 앞에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전했다.

문성식의 '정원과 나'(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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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작가는 연필만으로 작업하는 흑백그림이 재미없으면 그 위에 아크릴 과슈를 덧칠해 풍부한 색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세로 117㎝에 가로 364㎝로 이번 전시작 중 크기가 가장 큰 ‘그냥 삶’(2021~2022) 신작은 그가 거주하는 해운대의 한 유명 식당에서 발견한 장미를 모티브로 삼았다. 하늘빛을 머금은 청록색 바다와 같은 색을 배경으로 하얀 장미와 나비, 거미줄을 섬세히 표현했다. 작가가 물호스를 이용해 정원에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을 담은 ‘정원과 나’(2021) 작품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색을 사용해 여러 꽃들을 생생히 표현했다.


문성식의 '겨울나무'(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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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겨울나무’(2021)는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이 주요 소재로 삼은 고목나무를 연상케 한다. 앙상한 가지만 표현한 나무의 모습이나 초가집의 흙벽과 같은 질감이 비슷한 인상을 자아낸다. 문 작가는 조선 후기 화가인 겸재 정선(1676~1759)부터 박수근과 이중섭(1916~1956) 등 근대미술 거장의 회화언어를 자신만의 호흡으로 재해석했다. 문 작가는 "박수근의 공예적이면서도 소박한, 이중섭의 비공예적이면서도 동적인 느낌을 어떻게 화학적으로 잘 섞어 지금의 나를 닮은 선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한다"면서 "여러 작가를 참조하지만 결국 해답은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고 그 결과물은 나의 휘두름을 통해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문 작가는 누군가 자신에게 뭘 그리는 작가인지 물어보면 "그냥 세계를 그린다"고 답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 품고 안 그리거나 못 그릴 게 없는 화가로 살고 싶은 게 그의 소박한 꿈이다. "이제는 판단하지 않고 막 그리려 한다. 너무 뜸 들이고 애쓰는 그림은 그리지 않을 생각이다. 많이 그리다 보면 그만큼 좋은 그림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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