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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붕괴사고' 안전하고 빠른 구조 기원 ‘노란 리본 건넸다’

최종수정 2022.01.23 10:27 기사입력 2022.01.23 10:27

취재 기자 아닌 한 시민으로 '살아서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한다' 두손 모아

외벽 등이 붕괴된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201동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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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호남취재본부 박진형 기자] 다른 기자들이 뛰면, 나도 같이 그쪽으로 뛰었다. 피해자 가족들을 최대한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옆에 섰다. 진입이 통제된 피해자 가족 천막에는 어떤 중요한 내용이 나올까 싶어 귀를 바짝 댔다.


소방당국이 회의하는 상황실 앞 폴리스라인 주변에서 119가 적힌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이 보이면 붙잡아 구조 상황을 물어보기 바빴다.

여기는 1분 1초가 바쁘게 돌아갔던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이다.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후 12일째를 맞이한 지난 22일. 치열했던 취재 열기도 한 차례 걷어진 분위기가 피부로 와닿았다. 현장에서 밤을 새우는 기자들은 별로 없는 듯 했다.


항시 서서 대기 중이던 취재진들이 많이 빠진 모습이고, 주인을 알 수 없는 사다리 의자와 카메라 몇 대만이 세워져 쓸쓸함마저 감돌았다.

폭풍 같은 며칠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취재에 도움을 주는 소위 '홍보맨'들에게 "고생 많으십니다", "밥은 챙겨 드셨어요?"라는 말은 수시로 건넸지만 묵묵히 쓰레기를 치우고, 출입증을 교부하고, 컵라면을 나눠주는 봉사자들에게는 시선이 두지 않았던 게 내심 죄송스러웠다.


거대한 물체가 할퀴고 간 것처럼 안쪽이 드러난 201동 건물에 등을 돌리고 지난 10여일 간 취재에만 집중하면서 둘러보지 못했던 현장 주변을 차분히 살펴봤다. 평소라면 크게 관심 가지 않았을 곳곳에 마음을 비췄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사고 현장 인근에 설치된 철조망 울타리에 '무사 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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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놓지 말아요' 등 글귀로 장식된 노란 리본이 걸려 있는 인근 철조망에는 여러 사람의 흔적이 엿보였다.


그 중에 노란 물결이 채워지지 않은 빈공간이 유독 커보였는데, 곧 이유를 알게 됐다. 리본 테이프가 다 떨어져 빳빳한 종이 재질의 원통만 남아 있던 것이다.


리본 테이프를 사러 문구점으로 향했다. 폭은 조금 좁았지만, 글귀를 적을 공간은 충분해 보이는 걸 짚고 계산을 마쳤다. 문구점 주인이 고맙게도 2000원을 할인해 준다고 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미리 밝혀 두지만, 노란 리본에는 어떤 정치적 의미도 두지 않았다. 그 유래를 살펴보니 미국에서 전쟁에 참여하는 남편을 둔 아내나 가족들이 나무에 노란 리본을 묶고 무사귀환을 바라며 기다린 일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새로 사온 노란 테이프를 적당하게 풀어 가위로 잘랐다. 철조망에 한 번 매듭을 짓고 고정시킨 다음에 네임펜으로 '무사 귀환을 바랍니다'라고 써내려 갔다.


어떤 분이 '나도 하나 써야겠다'며 거들었다. 알고보니 그는 피해자 가족이었다. '살아서 돌아오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적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솔직히 많이 내려놨다"고 절망하면서도 "살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다시 희망을 가지기도 했다.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은 절망도 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층부 정밀 수색을 위한 타워크레인 해체 작업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면서 희망이라는 끈을 꽉 붙들려는 굳은 심지가 읽혔다.


육중한 철근 더미만큼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는 그의 옆을 지키며 20여분간 얘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 외에 뚜렷한 도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허탈함, 무력감, 아쉬움 등 복잡한 감정을 숙제처럼 남겨두고 다시 현장으로 걸어 갔다.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서구자원봉사센터 회원들이 따뜻한 차를 준비해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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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핫팩과 초코파이를 나눠주던 한 부스도 철수하고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입주민 차량 등이 수시로 오가는 도로라서 진입로 확보 차원에서 뺀 건가'라고 추정할 뿐이었다.


초코류 디저트는 추운 날씨에 몸의 에너지를 끌어 올린다고 한다. 강풍에 눈 핏줄까지 터져가며 '투혼 정신'을 발휘하는 의용소방대원, 해가 저물 때까지 묵묵히 헌신하고 있는 봉사자들에게 반가운 간식일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초코파이를 사서 봉투에 가득 담았다. 커피 봉사를 하는 한 천막으로 찾아가 이를 건네고 나왔다.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물음에 "그냥 시민입니다"라고만 했다.


이때, 말은 왜 더듬었는지 모르겠다. 10년 전쯤에 지하철에서 엎드려 있는 노숙자에게 햄버거를 준 것 외에는 별다른 기부를 한 적이 없어서 어색했다(?)는 게 정답에 가까웠다.


짐을 챙기러 임시 기자실로 쓰이는 어린이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길목에 있는 계단도 밟았다. 사고 발생 이틀 째였나. 소방당국의 브리핑 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을 들으며 기사를 쓰던 곳이다.


당시 옷 단추를 잠그기도 힘들 정도로 손이 얼어 붙어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들겼다. 녹음 앱에서 '-3초' 버튼을 무한 반복하며 씨름하고 있을 때, 누군가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따라와 봐. 어제 여기자들도 밖에서 덜덜 떨며 기사 쓰는데 보기 안쓰럽더라고." 어린이도서관이 임시 기자실로 바뀐 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테이블도 추가로 몇 개 더 들어오고, 전기난로도 채워지며 구색이 갖춰졌다.


자리가 부족하면 옮겨 갔던 커피숍에도 긴 테이블 두 개가 배치됐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하루 종일 자리를 차지하는 기자들이 불편했을 법도 한데, 단순 억측이었나 보다. 분식집을 가니, 주인이 "사고 때문에 손님이 많이 와서, 좁은 공간에서 먹느라 불편했죠"라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밥을 먹었으니 다시 힘을 냈다. 10분 뒤면 피해자 가족의 아들과 딸이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서는 기자회견이 있다.


한 피해자 아들은 취재진과 만나 "소방노조원들이 현산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 보도를 봤다. 저희도 현산의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구조가 지연된다고 생각한다"며 "오늘부터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하루빨리 안에 계신 가족들을 찾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다른 피해자의 딸도 "현산 때문에 사고가 난 건데 최대한 지원한다고 말만 해놓고 회장이 왔다 가도 달라진 게 없다"며 "전문가인 현산이 해결 방안을 여러 가지 제시해야지, 소방대원이 하기만을 기다리는 상황이 너무 화가 난다"고 쏘아붙였다.


콘크리트 잔해에 깔려 있을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동생 곁을 지키며 뜬눈으로 밤새우는 가족들. 언제쯤 구조 소식이 들려올까.


사고는 지난 11일 오후 3시 46분쯤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201동 건물의 23~38층 외벽 등이 무너져내려 발생했다.


이로 인해 작업자 1명이 사망하고, 5명이 연락 두절됐다. 이들은 붕괴한 건물의 28∼34층에서 창호, 소방설비 공사 등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아이파크 실종자 가족들이 천막 안에서 구조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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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취재본부 박진형 기자 bless4y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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