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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딸각발이] 英 해적왕 한명이 뒤바꾼 대영제국의 역사

최종수정 2021.06.25 11:13 기사입력 2021.06.2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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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보물선 약탈...동인도회사 식민지화 앞당겨
해적들의 민주주의 방식 운영...美 건국에도 영향

스티브 존슨 지음 /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만6800원

스티브 존슨 지음 /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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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인류 모두의 적’은 해적들이 판치던 17세기 인도양에서 2년간 벌인 해적질로 당대 최고 ‘해적왕’이라 불린 잉글랜드 출신 해적 헨리 에브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책이다. 그는 1695년 인도 무굴제국의 지배자 아우랑제브 황제의 보물선을 약탈한 이후 세계에 수배령이 내려지고 책 제목처럼 인류 모두의 적으로 불리게 됐다.


1695년 9월11일 에브리의 해적선 펜시호가 무굴제국 황실 보물선을 약탈하는 장면에서 책은 시작된다. 생활고로 일찍이 영국 해군에 입대한 에브리와 함께 지중해·대서양에서 포술을 단련받은 영국 해적들은 노련했다. 반면 실전 경험이 적은 무굴제국 군대는 무참하게 무너진다. 무굴제국군의 작은 실수도 놓치지 않는 영국 해적들의 집요함에 보물선 함대의 주인이 순식간 바뀌고 만다.

이렇게 대담무쌍한 범죄를 저질렀지만 에브리는 끝내 잡히지 않는다. 그는 1699년까지 대서양과 지중해에서 신출귀몰한 약탈 솜씨를 보여준 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다. 약탈로 막대한 부(富)까지 축적한 그는 개명한 뒤 중동이나 아시아 어딘가로 은퇴해 노후를 보냈을 것이라는 추측만 무성하다. 그가 전설적인 해적왕으로 불리는 것 역시 그의 최후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일 듯하다.


역사 다큐멘터리 시나리오 전문가인 저자는 역동적이지만 자칫 해적 개인의 미시적 일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하나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과 연결시킨다. 에브리의 해적행위가 가져온 많은 나비효과들이 영국 동인도회사의 인도 식민지화를 앞당겼다는 것이다. 앞으로 수백년간 지속될 역사의 첫걸음이 한 대담한 해적의 약탈로부터 시작됐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에는 나름 근거가 있다. 사건 발생 후 아우랑제브 황제는 동인도회사에 에브리의 체포를 맡기고 인도양에서 동인도회사가 자국 무역선을 해적들로부터 보호하라고 명령한다. 이것이 역사를 바꿨다는 것이다. 인도 아대륙을 통일한 아시아의 전제군주 입장에서 인도양 무역선 보호는 매우 하찮은 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갓 인도에 무역망을 구축하기 시작한 동인도회사로서는 무한한 확장의 기회가 생긴 셈이다.

1685년 인도 무역지사 설립과 파견을 허가받은 동인도회사는 이제사 인도 전역에서 합법적으로 용병사업에 나설 수 있는 활로가 생긴다. 동인도회사의 군사력은 유럽에서 각종 화기를 들여오고 인도 현지에서 용병을 고용해 만들어진다. 이어 발생한 무굴제국의 혼란과 지역 토후들의 반란 속에 동인도회사는 호황을 맞이한다.


동인도회사는 용병 이용대금을 제대로 입금하지 못한 인도 제후들로부터 잔금 대신 땅과 징수권도 받기 시작한다. 사업영역이 넓어지면서 인도 곳곳을 지배하는 일대 세력으로 성장한다. 영국 본국의 투자자들에게 배당을 나눠주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사업 확장에 나선다. 동인도회사는 훗날 ‘제국주의’라고 불리는 서구국가들의 식민지 착취 경영기법의 선구자로 기억된다. 이 경영기법은 1858년 동인도회사를 매입한 뒤 상장폐지시킨 영국 정부에 고스란히 상속된다.


저자는 근대 기업문화와 민주주의에도 해적들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약탈물의 성과별 배분방식, 계급이 아닌 능력에 따라 정해지는 해적선 내 직급, 모든 선원의 투표로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 등이 세계 최초의 공화국인 미국 탄생 100년 전 해적들로부터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완전히 납득하기는 어려운 논리의 비약이 있긴 하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도 미국의 탄생에 해적의 기여가 컸다는 것만큼은 부인하지 않는다. 미국 독립이 시작된 필라델피아 등 동부 주요 도시들 모두 중남미 스페인령 서인도제도에서 약탈한 물건들을 싣고 동북부로 도망쳐온 해적들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이기 때문이다. 해적들은 길을 막기만 한 게 아니라 새로운 항로 개척에도 앞장섰던 셈이다.


저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현대인의 입장에서 모든 게 멈춰 서 있는 듯한 300년 전 세계의 역동성이다. 실크로드 바닷길과 대서양 횡단 항로를 통해 세계 바다는 이미 연결돼 있었다. 막대한 물량 이동이 있었기에 해적들도 나타날 수 있었다. 이런 전근대 시대부터 시작된 세계화에 대한 개념과 역사적 이해도가 높은 독자라면 더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는 책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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