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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산책] 광부가 된 화가…그림 아닌 현실이다

최종수정 2021.05.13 10:01 기사입력 2021.05.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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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 개인전 '회천(回天)'

1980년 황지탄광 매몰 사망한 광부 작업복 그림 수상 후
1982년 돌연 탄광촌으로 떠나
태백·삼척·정선 등지 돌며
3년간 광부로 살아가며
탄광촌 풍경·노동자 화폭에

2010년대에는 머리카락 등 다양한 재료로 인물화 그려

황재형, 황지 330, 1981, 캔버스에 유채, 176x130cm.(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황재형, 황지 330, 1981, 캔버스에 유채, 176x130cm.(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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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멀리서 보면 V넥 흰 셔츠에 제법 빈티지한 청 재킷이다. 하지만 그림 바로 앞에 서면 더 이상 옷으로 보이지 않는다. 탄가루로 범벅이 된 영락없는 작업복이다. 오른쪽 가슴엔 ‘황지330’이라는 명찰이 자수로 새겨져 있다. 이 노동자가 금방 다른 이로 대체될 수 있다는 익명의 존재임을 암시한다. 왼쪽 주머니의 신분카드엔 ‘유효기간’이 적혀 있다. 1982년 6월30일. 계약직 노동자로서 밥벌이가 끝나는 날이다. 흰 셔츠의 ‘쌍방울’이라는 로고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어 ‘이건 그림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국내 리얼리즘 화가인 황재형(69)의 그림 ‘황지330’(1981)이다. 1980년 황지탄광에서 매몰 사고로 사망한 광부의 낡은 작업복을 보고 그렸다. 작가가 강원도 정선군 함백과 강릉시 정동 일대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 경험도 바탕이 됐다. 그림의 높이는 2m가 넘는다. 황재형은 중앙대 회화과 재학 시절 이 작품으로 제5회 중앙미술대전(1982)에서 장려상을 받으며 화단으로부터 주목받았다.

황재형은 1982년 돌연 강원도 탄광촌으로 떠났다. 작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광부의 삶을 살아보지도 않고 이를 소재로 상이나 받는다면 사기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태백·삼척·정선 등지를 돌며 3년간 광부로 일했다. 그러면서 탄광촌의 풍경과 노동자들을 화폭에 담았다. 구경꾼으로 물감을 적신 과거와 달리 광부로 붓에 땀을 묻혀 그린 그의 작품들에서 현실감이 살아났다. ‘광부화가’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즈음이다.


황재형, 식사, 1985, 캔버스에 유채, 91x117cm.(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황재형, 식사, 1985, 캔버스에 유채, 91x117cm.(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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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1985)는 황재형이 광부의 삶을 살아본 뒤 탄생한 작품이다. 막장에서 광부들이 쭈그려 앉아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다. 헤드렌턴 불빛으로 서로를 비춰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숟가락을 입에 가져갈 때조차 동료의 밥으로 향하는 빛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황재형의 작품 65점을 내건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1980년대 작가가 광부로 일하던 시기에 그린 작품, 1990년대 쇠락한 폐광촌과 강원도 풍경, 2010년 이후 머리카락과 흑연을 활용한 인물화 등 다양하다.

전시명은 ‘회천(回天)’이다. 회천은 ‘천자(天子)나 제왕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다’ ‘형세나 국면을 바꿔 쇠퇴한 세력을 회복하다’라는 뜻이다. "회천은 물리적인 군사혁명이나 쿠데타가 아니다. 진정한 가치관의 전복이다. 가진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배우고, 배운 사람들이 못배운 사람들에게 배우는 전복. 이런 것들이 실현돼야 비로소 대량생산 체제에서 발생하는 재앙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 황재형의 말이다.


황재형, 백두대간, 1993~2004, 캔버스에 유채, 206.5x496cm.(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황재형, 백두대간, 1993~2004, 캔버스에 유채, 206.5x496cm.(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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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형은 1980년대 중반 심한 결막염으로 광부 생활을 접었다. 그러나 강원도를 떠나진 않았다. 그는 태백과 동해를 오가며 인간의 삶보다 자연에 천착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이 ‘백두대간’(1993~2004)이다. 11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세로 2m, 가로 길이가 5m에 이른다. 밤새 눈보라가 몰아친 다음날 고요해진 태백산맥의 풍경을 담았다. 황재형은 "산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기 위해 헬기 타고 내려다보기까지 했다"고 소회했다.


작가는 탄광촌 경험을 자연과 연결한 그림도 다수 그렸다. 눈 쌓인 산의 능선과 계곡을 황톳빛 흙으로 그린 작품의 제목은 ‘어머니’(2005)다. 탄광이 촌락을 이뤄 수십년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진 풍파를 막아준 산의 보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10년대 들어 황재형은 다양한 재료로 인물상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대표작이 ‘드러난 얼굴’(2017)이다. 머리카락을 소재로 노인의 머릿결과 얼굴 주름이 극사실적으로 표현됐다. 머리카락은 유화보다 작업시간이 몇 배는 더 든다. 황재형은 "내게 머리카락이 사무치는 건 머리카락은 개개인의 삶이 기록된 필름이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올곧은 정신성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황재형, 드러난 얼굴, 2017, 캔버스에 머리카락, 259.1x193.9cm.(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황재형, 드러난 얼굴, 2017, 캔버스에 머리카락, 259.1x193.9cm.(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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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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