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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에 멍드는 민간금융…선거마다 포퓰리즘 횡행(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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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청구서 169兆…빚 청구서 '시한폭탄'
선심성 금융정책은 시장 왜곡 가능성 커
시장논리 어긋난다 비판에도 일부 입법화

정치권력에 멍드는 민간금융…선거마다 포퓰리즘 횡행(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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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기호 기자, 송승섭 기자]지난해 코로나19와 관련해 5대 금융지주사에서 동원된 금액이 168조7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정치권이 서민금융 지원을 이유로 금융사들을 압박한 결과다.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비해 배당 자제 등 재무건전성 관리를 요구하면서도 번 만큼 이익을 내놓으라는 요구는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도 올해 1분기 12조550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낸 금융지주사들 대부분 올해도 사상 최대 기록으로 성과를 이어갔다. 하지만 금융지주사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올해 보궐선거에 이어 내년 대선까지 본격적인 선거 시즌을 맞아 정부나 정치권의 요구 수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지난해 4월부터 지난 4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코로나19 대출 원금 유예규모는 86조원(35만건)이다. 정부 주도로 조성되고 있는 K-뉴딜 펀드에 5대 금융지주는 약 70조원 규모의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 금융사가 연간 1000억원씩 걷어 서민금융을 지원해 ‘금융권 이익공유제’라는 평가를 받게 된 서민금융지원법 개정안도 특별한 여야 이견 없이 올해 3월 통과됐다.


대규모로 조성됐지만 사용하지 못한 금액도 적지않다. 지난해 20조원 조성을 목표로 출범한 채권시장안정펀드의 경우 은행에 할당된 금액은 4조7000억원이었다. 10조원 조성을 목표로 한 증권시장안정펀드도 8조원은 5대 금융지주와 이에 속하지 않은 대형 증권사 등 금융업권이 분담키로 했다. 두 펀드 모두 채권 및 증시 상황이 나빠지면 언제든 재동원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렇게 코로나19 금융지원 금액과 K-뉴딜 펀드, 채안·증안펀드 규모를 모두 더하면 무려 168조700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은 경제가 어려울 때 금융사가 협조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정부가 감당해야 할 부분까지 금융사에 과도하게 전가하면서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실제 정치권의 금융 관련 법안은 21대 국회 출범 직후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은행빚 탕감법, 이자멈춤법, 이익공유제 등 포퓰리즘 법안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 등 각종 규제 입법을 밀어붙히거나 논의 중이다.

문재인 정부는 시장 논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에도 불구, 서민 보호를 명목으로 속속 현실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법정 최고금리 인하다. 법정최고 금리는 오는 7월7일부터 연 24%에서 연 20%로 인하된다. 2011년 연 39%에서 34.9%로, 2016년 27.9%, 2018년 24%로 낮아진 법정 최고금리는 2017년 대선에서 후보들이 연 20%까지 낮추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고 처리됐다. 당초 금융당국은 일부 저신용자들이 금융회사 대출을 받지 못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했지만 정치권의 압박에 손을 들었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해 법정 최고금리를 연 10% 선까지 인하하자며 공을 띄웠고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카드 수수료 인하도 대표적인 포퓰리즘 법안으로 꼽힌다. 카드 수수료는2007년 3년마다 적격비용(원가)에 기반해 수수료를 재산정하기로 했지만 이와 상관없이 선거 때마다 인하됐다. 2017년에도 대선 후보들이 카드 수수료 인하를 공약해 추가 인하됐고 관련 법안은 잇따라 발의됐다. 재산정을 앞둔 올해도 내리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코로나19 앞세워 고삐 풀린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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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금융사 압박은 지난해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4·7 재보선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여당 내에서 한국은행이 돈을 충분히 풀지 않았고, 시중은행이 서민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아 재보선 선거에 졌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지난달 28일에는 여당 원내대표가 직접 신용불량자의 사면 카드도 꺼내들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은행이 거둔 이익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보수적인 자본 관리가 필요함에도 정부와 정치권의 선심성 정책에 동원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금융권의 불안감도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법안 및 공약이 선거철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진 탓이다. 여야간 치열한 격돌이 벌어졌던 2012년 18대 대선 때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금융회사가 연체채권을 사게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20~30%대 고금리 대출자의 경우 1인당 1000만원 한도 내에서 연 10% 대출로 갈아타게 만들겠다고도 약속했다. 맞상대였던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일명 피에타 3법(이자제한법·공정대출법·공정채권추심법)을 제시하며 금융권의 이자율 상한선을 낮추겠다고 나섰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변동금리·단기 일시 상환 방식에서 고정금리·장기분할상환 대출로 만들겠다는 공약도 발표했다.


선거가 임박한 정치권은 ‘민심 수렴과 조정’이라는 역할론을 앞세워 민간영역의 경계를 허물고 정부를 압박해 표를 끌어모으려 했지만, 비판 목소리도 거셌다. 18대 대선 당시에도 상품을 취급하는 민간 금융사에 아무런 유인책을 부여하지 않고, 일방적인 지원만 강요하는 경우가 많아 금융사 옥죄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분별한 채무자 탕감 정책은 추후 도덕적 해이를 낳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거셌다.


19대 대선에서도 현실성이 떨어진 금융 공약들은 무분별하게 쏟아졌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후보 대부분이 최고이자율을 20%로 낮추겠다고 입을 모았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체크카드 수수료를 0%로 인하하고 카드 수수료 1% 상한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였던 이재명 후보는 금융채무 취약계층 490만명에 1인당 500만원을 탕감시켜주자는 주장을 펼쳤다.


시장 개입하면 '정부실패'…"피해자 결국 소비자한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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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금융이 규제산업임을 고려해도 감독의 범위를 넘어 직접 조종하려 하는 순간 개입에 의한 ‘정부 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은 규제산업이라 독점이익을 보장받기 때문에 정부가 팔을 비틀기 더 쉽다"면서 "과도한 요구가 이어지면 대출을 하면 안 되는 곳에 실행이 되고, 정작 받아야 할 사람이 못 받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을 시장원리에 맞지 않게 움직이는 건 경제를 망치는 상당한 요인이 된다"며 "규제는 금융의 건전한 움직임을 관리하고 시장 왜곡을 줄이기 위해서 실시하는 건데 거꾸로 정부 규제가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의 부적절한 금융시장 개입이 결국 시장 질서를 저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도 "정부가 선거를 너무 의식해 시장 정책을 왜곡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시장개입이 지나치고 금융의 본래 기능을 상당히 무시하는 측면이 있다"며 "은행으로서 일종의 정치 리스크가 발생해 경영이 불확실해진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원칙 없이 그때 그때 규제하다 보면 은행이 손해를 입고 해당 피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당국에 대한 쓴소리도 내놨다. 공정한 룰을 잡아주고 금융산업을 건전하게 키워야 할 당국이 포퓰리즘에 물든 정치권 눈치보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성태윤 교수는 "금융당국이 경제원칙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성인 교수도 “금융당국 역시 정치권의 논리에 맞춰 움직이는 것을 자성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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