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노숙자에게 새 삶 처방해주는 '길 위의 의사'

뉴스듣기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최영아 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
20년 넘게 노숙인 진료…주거·자립지원도
의료혜택 소외받는 사람들 위한 체계 마련

노숙자에게 새 삶 처방해주는 '길 위의 의사'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한진주 기자] "피할 수 없다면 같이 살아야죠. 그런 삶을 본 이상 외면할 수 없었어요. 오히려 의사로서, 인간으로서 제가 더 많이 배웠죠."


서울 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인 최영아 씨에게는 ‘길 위의 의사’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최 씨가 돌보는 외래 환자의 80%는 노숙인이다. 최 씨는 노숙인들에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도록 처방전을 내어준다. 병을 진단하고 약을 처방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부의 돌봄을 받고 자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지금은 아침밥 반찬 투정을 하는 두 자녀를 둔 엄마이자, 의사 남편과 삶에 대해 고민하는 아내이자, 노숙자들을 치료하고 보다 나은 삶으로 인도하는 21년차 의사다. 연구실 책상 벽에는 질서없이 붙여둔 프린트물이 빼곡했고 연구실 한 켠에 간이침대가 접혀있었다.

최 씨가 노숙자 치료를 하게 된 발단은 의대생 시절 청량리역에서 노숙인이 한 명의 환자로 대우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다. 최 씨는 "당시에는 노숙자증이 없었고 112나 119와 동행해야만 노숙인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며 "본과 1학년 때 응급실에서 노숙인 환자를 짐승처럼 대하는 것을 보고 이들을 한 명의 환자로 진료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20년 간 거쳐온 곳들도 노숙자 치료를 전담하는 의료시설들이다.


최씨는 2001년 내과전문의를 취득한 직후 다일천사병원을 개원했다. 30대에 병원을 열고, 3년 가량을 병원에서 살면서 보냈다. 2004년부터 노숙인들에게 진료·재활을 제공하던 요셉의원에서 5년 간 근무했다. 멘토인 고 선우경식 요셉의원 원장을 통해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기관의 토대를 잡을 수 있었다. 2009년부터 5년간 서울역 다시서기의료진료소, 2014년 도티기념병원을 거쳐 2017년 서북병원으로 옮겨왔다. 최씨는 지난 23일 라이나전성기재단으로부터 라이나50+어워즈 사회공헌부문을 수상했고 지난해에는 서울시 하정 청백리상 등을 받았다.


노숙자에게 새 삶 처방해주는 '길 위의 의사' 원본보기 아이콘


최 씨는 노숙인 진료 뿐 아니라 장애인 진단 지원부터 비영리단체인 회복나눔네트워크를 통해 노숙자들에게 그룹홈 등 임시 주거시설이나 주거비 지원까지 하고 있다. 최씨는 "환자들을 만나고 그룹홈까지 연계해주기 위해 서북병원으로 왔다. 주소를 만들어주고 ‘의료보호 1종’으로 만들어야 사회가 돌봐주는 대상이 된다"며 "집을 제공하는 것이 병원에 입원하는 것보다 낫고, 노숙인들이 술을 끊고 집이 생겨야 건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숙인들이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도 병원 밖을 나가면 다시 술에 절어 건강이 악화되고 병원을 찾기 일쑤여서다.

최씨가 20년 간 노숙인 치료를 전담하면서 깨달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인간관계’였다. 그는 "노숙인들은 질병이나 가정이 파괴되는 경험을 축약적으로, 더 빨리 밟는다. 환경 즉 가족, 인간관계가 원인"이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관계 맺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잘 돌보는 것, 함께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길에서 헤매다 일상을 되찾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회복나눔네트워크가 속한 트리니티패밀리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식당 ‘스마일박스’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와디즈를 통해 ‘키토유니짜장’을 펀딩하기도 했다. 최 씨는 "사람이 금방 변하지 않는다. 바뀌는 데 몇년이 걸린다. 5~10년은 지켜볼 각오를 해야한다"면서도 "한 두명이라도 장기적으로 함께 가기 위해서 회복나눔네트워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