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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 백상 연기상 백석광 "'와이프'로 혐오에 대해 더 깊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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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남에서 게이까지 1인3역 연기 변신 압권 "많은 사람들이 와이프 보고 공감했으면"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그동안 고생했다며 엄청 토닥여주는 기분이 들었다."


배우 백석광은 지난달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18년 만에 부활한 연극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그에게 영예를 안겨준 작품은 지난해 국내 초연한 '와이프'.

백석광은 오는 7월30일~8월2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와이프' 앙코르 공연을 한다. 제56회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 등 3관왕을 차지하고 백상 경사까지 더해지면서 '와이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뜨겁다. 지난달 25일 입장권 예매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6회 공연 모든 좌석이 매진됐다.


'퀴어'를 다룬다는 점에서 '와이프'는 토닥임의 연극이다. 극은 1959년, 1988년, 2020년, 2042년 등 시간적 배경이 다른 네 막으로 구성된다. 각 막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대를 거치며 관계 맺는다. 2막에서 게이 커플 '에릭'과 '아이바'가 등장하고 3막에서 나이 든 아이바는 에릭의 딸 '클레어'를 만나는 식이다. 백석광은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이어지는 퀴어의 역사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연극 '와이프' 연습 장면. 왼쪽부터 정환, 백석광, 이주영 배우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와이프' 연습 장면. 왼쪽부터 정환, 백석광, 이주영 배우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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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광은 1막에서 레즈비언인 '데이지'의 남편 '로버트'로, 2막에서 아이바로, 3막에서 클레어의 남자친구 '핀'으로 등장한다. 1막 로버트에서 2막 아이바가 돼 전혀 다른 성격(?)의 캐릭터로 빠르게 변신하는 백석광의 연기가 압권이다.


로버트는 여성 해방이 주제인 연극 '인형의 집'을 아내 데이지와 함께 본 뒤 쓰레기 같은 연극이라며 극도로 흥분하는 마초남이다. 반면 게이인 아이바는 갖은 아양과 교태로 "당신의 눈에 정액 발사" 같은 대사를 치는 인물이다.

백석광은 로버트에서 아이바로 빠르게 변신하면서 자신이 몸 좀 쓸 줄 아는 배우임을 보여준다. 백석광의 전공은 무용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을 다녔고 2004년 동아무용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촉망받던 무용수였다. 당시 상을 받은 작품은 '청아 청아!'였다. 백석광은 심청과 심 봉사 1인2역을 하며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로 한 날의 이야기를 표현했다. 콩쿠르 대상은 그의 삶에 전환점이 됐다. 대상을 받으면서 그는 병역을 면제받았다. 유학과 해외 무용단 활동 등을 생각했지만 경제적 여건이 여의치 않았다. 그는 '장르간 유학'을 택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연극을 공부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청아 청아!'는 22살 때 입대를 앞두고 그동안 해온 무용을 정리하자는 생각에서 만든 작품인데 덜컥 상을 받았다. 친구들도 다 유학을 가고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의치 않았고 장르간 유학을 가자고 결심하고 연극을 시작했다. 상을 받고 며칠 후 한예종 무용원을 그만뒀다."


연극과 무용을 병행하다 2006년부터 연극에만 집중했다. 한예종에 재입학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번에는 무용원이 아니라 연극원 연출과였다.


그는 연기하면서 몸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감정이 생겨야 벽을 칠 수 있지만 벽을 침으로써 감정이 생길 수도 있다. '신체성'은 심리와 굉장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신체성을 통해 역할의 차이를 표현한다. 로버트의 귄위적인 태도는 몸을 덜 움직임으로써 표현하고, 아이바를 연기할 때는 굉장히 빠른 제스처로 그의 심상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캐릭터를 바꾸는 것이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1막과 2막 사이에 음악이 나오는데 2막의 아이바가 보고 나온 연극 '인형의 집' 음악이다. 그 음악이 무대에 울려퍼지면 그 심상이 저에게 전해지고, 1막의 로버트의 의상과 다른 굽이 있는 신발과 타이트한 의상으로 갈아입는 순간 신체가 변하면서 마음이 변하는 것이다. 이렇게 음악과 의상 등을 준비하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는다. 연극이라는게 유기적이기 때문에 혼자서 대단한 뭔가를 할 수 없다. 서로의 힘을 이용할수록 스태프와 연출, 배우가 교감할수록 더 힘을 얻고 자신있게 연기할 수 있는것 같다.


백석광은 초연 때와 이야기나 무대 구성은 큰 변화가 없지만 극 자체는 아주 많이 발전된 형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초연 때 많은 시간을 보낸 대본에 담긴 퀴어와 관련된 코드를 해석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연 때는 대본에 쓰여진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데 거의 대부분을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이해가 된 상태에서 좀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배우들도 1년간 품고 있었으니 더 원숙해진 모습을 보일 것이다."

지난해 초연한 '와이프'의 2막 장면. 에릭 역의 오정환(왼쪽)과 아이바 역의 백석광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지난해 초연한 '와이프'의 2막 장면. 에릭 역의 오정환(왼쪽)과 아이바 역의 백석광 [사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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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는 소수이면서 약자인 퀴어를 다루기에 꽤 많은 사회적 함의가 담겨 있는 연극이다. 백석광은 "'이게 나예요'라고 말하지 않으면 넌 자유럽지 못해"라는 아이바의 대사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나는 동성애자야'라고 말하는 것만이 커밍아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렇게 느꼈어', '난 이게 좋고 이건 싫어'라고 말하는 것. 곧 나를 드러내는 것이 커밍아웃이다. 그렇게 해야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 내가 과연 '이게 나예요'라고 말하면서 살고 있는가, 이런 고민들이 생기면서 작품과 상호관계가 맺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백석광이 말한 커밍아웃의 의미 확장은 사회의 변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1막의 배경이 되는 1959년만 해도 레즈비언 커플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변방에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우리 속에서 많이 섞이고 어우러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한 발자욱씩 나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한편에서 퀴어는 여전히 적대시된다. 그래서 퀴어가 우리 사회 속으로 섞여들어올수록 논란도 커진다. 백석광은 '와이프' 덕에 혐오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처음 '혐오'에 대해 생각한 계기는 지난해 출연한 연극 '추남, 미녀'에서였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보의 동명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작품으로 당시 백석광은 혐오스러운 얼굴로 태어난 추남 '데오다'를 연기했다.


"혐오라는 감정을 공부하기 위해 이런저런 책을 보던 중 '혐오사회'라는 책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혐오라는 감정은 대상을 잘 모를 때 발생하더라. 이민자라든가, 동성애자라든가. 사실상 우리랑 별반 크게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와이프'를 보고,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게 공연을 보는 이유 아닌가."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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