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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성공의 아이콘 '프라다' 어떻게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나 [히든業스토리]

최종수정 2020.06.03 15:28 기사입력 2020.06.0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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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만의 경쟁력, 기술 발명 및 철저한 재료 관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통해 제2의 전성기 누려
욕망과 개척의 상징 프라다...성공한 사람들 즐겨 찾는다는 인식

프라다 매장./사진=연합뉴스

프라다 매장./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수완 기자] 프라다(PRADA)는 의류, 가죽 액세서리, 신발, 가방 등을 제조·판매하는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로 유명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성공 지향적인 패션 잡지사의 편집장을 상징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기도 했다. 지금은 전 세계 약 80여 개국, 490여 개의 매장에 제품을 유통 중인 프라다는 어떻게 꾸준히 사랑받는 패션 브랜드가 될 수 있었을까.


이탈리아 사보이 왕실 공식 납품…명품 패션 프라다의 탄생

설립자 마리오 프라다의 이름에서 유래한 프라다는 1913년 마리오 프라다와 마르티노 프라다 형제가 이탈리아 밀라노에 문을 연 가죽제품 판매점 프라텔리 프라다('프라다 형제'라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패션 디자이너였던 마리오는 세계 각국에서 라인석(모조 다이아몬드), 거북이 껍질과 같은 진귀한 소재를 들여와 패션 상품에 응용해 유럽 왕가와 상류층 사이에서 각광받았다.


특히 이탈리아 사보이 왕실의 공식 납품 업체로 지정될 만큼 품질을 인정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패션 브랜드로 거듭났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1939~1945년) 이후 유럽 경기가 침체되면서 프라다 역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마리오는 그의 아들인 알베르토 프라다에게 가업을 물려주려 했으나, 알베르토는 가업을 잇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결국, 1958년 마리오가 사망하자 그의 딸인 루이자 프라다가 가업을 물려받아 20여 년간 경영했다.

프라다만의 경쟁력...기술 발명 및 철저한 재료 관리
1913년에 오픈한 프라다의 첫 번째 매장 전경./사진=프라다 공식 홈페이지 캡처

1913년에 오픈한 프라다의 첫 번째 매장 전경./사진=프라다 공식 홈페이지 캡처



프라다는 1913년부터 전통적인 수공예기법을 활용해 가방을 생산해왔다. 마리오는 설립과 동시에 사피아노 가죽을 개발했다. 사피아노는 이탈리아어로 '철망'을 뜻하며, 사피아노 가죽은 소가죽의 부드러운 부분을 선별해 그 위에 빗살·철망 무늬 스탬프로 패턴을 넣은 후 다시 광택을 내서 만든 것이다.


특히 스탬핑(Stamping) 공정은 70~75도의 온도에서 10~15초 만에 이루어지는 정교한 작업으로 심혈을 기울여 진행된다. 이렇게 완성된 가죽은 내구성이 뛰어나고 오염에 강한 특징이 있다.


사피아노 가죽은 지갑, 신발, 액세서리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시장 수요가 늘어난 1970년대 후반부터는 수공예 제작 방식에 현대화된 생산 설비를 결합시켰다.


이뿐만 아니라 프라다는 제품의 품질을 위해 원재료를 철저하게 관리해 오고 있다. 원재료인 가죽과 직물은 엄격한 요구사항을 토대로 독점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프라다는 제품 개발을 위해 연간 약 2백만 제곱미터의 양가죽과 카발리노(암소 뱃속의 송아지), 카프스킨(생후 1년 미만의 송아지 가죽), 스트루쪼(타조 가죽), 악어가죽 등 다양한 가죽을 사용하고 있다.

성공한 직장 여성들의 상징…명품 브랜드로 거듭나기까지
프라다의 디자이너이자 3대 회장인 미우치아 프라다./사진=EPA 연합뉴스

프라다의 디자이너이자 3대 회장인 미우치아 프라다./사진=EPA 연합뉴스



프라다는 마리오의 손녀이자 루이자의 딸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디자인을 맡으면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1977년 프라다를 이어받은 미우치아는 사업을 키워나갔다. 미우치아는 패션 디자인에 문외한이었으나, 이 때문에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프라다에 적용할 수 있었다.


그는 포코노 나일론과 같은 혁신적인 소재를 사용, 새로운 스타일의 패션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포코노 나일론은 군용 물품 공장에서 낙하산이나 텐트용으로 사용되던 방수천의 일종으로 가죽 소재의 가방만 주로 생산해오던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그는 이 소재를 활용하여 1979년에 백팩과 토트백 세트를 출시했는데, 이 제품은 전 세계 백화점과 부티크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이 가방은 1990년대에 성공한 직장 여성들의 상징이 될 정도로 크게 유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프라다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같은 성장에는 미우치아의 남편이자 최고경영자로 재임 중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를 빼놓을 수 없다. 1978년 당시 가죽 사업을 하던 파트리치오는 미우치아 프라다와 동업을 시작해 독자적인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가죽 라인을 개발했다.


파트리치오는 미우치아의 사업에 동참하여 영국제품 수입을 중단하고 기존의 제품 스타일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현재는 파트리치오가 프라다의 경영을 맡고, 미우치아가 디자인을 전담하는 2인 체제가 갖춰졌다.


욕망과 개척의 상징 프라다

프라다는 명품을 넘어 욕망과 성공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 2006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프라다(PRADA)를 제목에 내세웠다.


패션계와 패션 에디터들의 세계를 다룬 이 영화는 다양한 명품들이 등장한다. 특히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실존 인물이 바로 미국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장이자 패션계의 거장인 안나 윈투어다. 프라다가 성공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브랜드로 잘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프라다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 끌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다.


또한,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상류층의 화려한 생활을 그리기 위해 미우치아가 직접 영화 제작에 참여해 2천여 벌의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렇듯 소비자들 사이에서 욕망과 성공의 상징이 된 브랜드 프라다. 프라다의 매출은 지난 2018년 전년보다 6% 늘어난 31억4,200만 유로(약 36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수완 기자 su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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