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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훈의 돛단Book] AI혁명 이끈 '아싸' 딥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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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런스 J. 세즈노스키 '딥러닝 레볼루션'

AI 거장 써내려간 딥러닝 반세기
기득권 도전한 소수파의 고군분투

70년대 암흑기 거쳐 새롭게 부활
투자 러브콜 받으며 다방면 활약

가능성 낮을수록 모험심 불태운
연구자ㆍ지원가 정신 높이 사야

[아시아경제 박충훈 기자]"남자처럼 머리 깎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고(故) 김광석의 노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1995)' 노랫말 중 한 대목이다. 한참 개성이 폭발하던 1990년대라 가끔 남녀 구분이 어려울 때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1990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공지능(AI)으로 남녀를 구별하는 연구가 진행됐다. 대학생들의 얼굴 데이터베이스로 학습한 컴퓨터에 사람 얼굴만 보고 성별을 알아맞히게 한 것이다. 정답률은 81%에 달했다. 사람의 경우 87%였다. 좀 더 진화한 학습기술을 적용했더니 정확도는 92%까지 치솟았다.

'섹스넷(sexnet)'으로 이름 붙인 이 프로젝트에서 컴퓨터는 남성의 인중이 좀 더 길다거나 위뺨은 여성이 더 크다는 등의 특징을 잡아내기도 했다. AI의 태동기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다.


21세기 들어 AI는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 두뇌의 신경망(뉴럴 네트워크) 작동 방식에서 착안한 데이터베이스 기반 AI 학습, 이른바 '딥러닝(deep learning)'은 단연 관심 1위에 꼽히는 분야다. 하지만 지금의 영광은 과거의 숱한 역경이 있었기에 빛을 더 발한다.


신간 '딥러닝 레볼루션'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뉴럴 네트워크 분야에서 악전고투한 개척자들과 그들의 위대한 업적을 이야기한다. AI 분야 최고 학회인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NIPS)의 의장이기도 한 저자 테런스 세즈노스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UCSD) 교수는 신경생물학자 출신으로 뉴럴 네트워크의 기반을 닦은 딥러닝의 산증인이다.

그는 '딥러닝 레볼루션'이 "막대한 자금력을 자랑하며 해당 분야의 유일한 활동 조직임을 주장하던 AI 기득권층에 도전한 일단의 소규모 연구원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뉴럴 네트워크의 조상은 '퍼셉트론'이다. 1950년대 말 미국 코넬대학의 프랭크 로젠블랫 교수가 개발했다. 퍼셉트론은 사람의 눈이 패턴을 인식하는 방식에 착안한 알고리즘이다. 여러 힌트들(인풋)에 가중치를 곱해 나온 값으로 알파벳 모양 같은 패턴을 분류하고 범주화한다. 굉장히 명료하고 간단한 이론이라 과학자가 아닌 이들도 5분 정도 경청하면 개요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연구자들에 의해 몇몇 중대한 논리적 결함이 드러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 대세는 '로직(logicㆍ논리학)'으로 기울었다. 많은 데이터를 수집ㆍ가공할 기술력이 모자랐던 시절에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설계한 전자회로로 사람보다 뛰어난 AI도 만들 수 있다고 맹신했다.


AI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

AI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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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들어서야 뉴럴 네트워크의 반격이 시작된다.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양이 수천 배로 늘고 반도체 칩 집적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진보해 연구가 한결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사장되다시피했던 퍼셉트론 이론도 꾸준히 관련 기술을 연구한 과학자들에 의해 '다층 퍼셉트론'으로 업그레이드돼 연구에 힘을 실어줬다. 저자는 'AI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학 교수와의 일화를 빌어 당시의 활기찬 분위기를 묘사한다. 힌튼 교수가 그 시절 2~3년마다 한 번씩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 "두뇌의 작용 방식을 알아냈어요"라며 신나했다는 것이다.


이후 딥러닝은 음성인식과 사진 분야에서 인간에 비견할 만한 수행력을 갖추게 됐다. 저자는 바둑기사 이세돌이 알파고와 세기의 승부를 벌이는 모습에서 1966년 아폴로의 달 착륙 장면이 연상됐다고 밝혔다. 사실 구글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도 알파고가 불계승을 거두자 "우리는 달에 착륙했다"는 트윗을 올릴 정도였다.


현재 세계적 기업들이 딥러닝 연구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돈 냄새가 풍기는 곳에 자본가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세즈노스키의 제자와 동료들은 애플ㆍ구글ㆍ아마존ㆍ페이스북ㆍ바이두는 물론 많은 스타트업에서 AI를 일상에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하고 있다. 일례로 스타트업 이모션트에는 얼굴 표정을 순식간 파악하는 딥러닝 기술이 있다. 이모션트는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딥러닝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후보들 가운데 가장 높은 감정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알아냈다. 이모션트는 기술력을 인정 받아 2016년 애플에 인수됐다.


저자는 "머잖은 미래에 아이폰이 당신은 왜 화가 났는지 물어보는 수준을 넘어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자율주행차는 또 어떤가. 가까운 미래에 자율주행차로 인해 속도위반과 불법주차는 물론 음주ㆍ졸음 운전 사고도 사라질 것이다. 자율주행차가 도시 외곽에 자동 주차하는 시대를 대비해 도시계획가들은 이미 시내 주차장을 공원화하는 방안도 궁리 중이다.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미래에는 가장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는 쪽이 승자가 된다. 따라서 중국이 개인정보를 사유권으로 간주하는 서방 국가들보다 해당 연구에서 앞설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감시가 용인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이 딥러닝으로 AI를 유도미사일에 접목하고, 폐쇄회로 카메라로 사람을 추적하며, 인터넷 감시는 물론 범죄 예측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구글 딥마인드는 바둑 AI 알파고에 이어 게임 전용 AI 알파스타를 개발했다. 딥마인드는 알파스타가 '스타크래프트2' 배틀넷(온라인 대전)에서 '그랜드 마스터' 레벨(상위 0.2% 해당 플레이어)에 올랐다고 지난달 31일 과학 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사진은 알파스타의 경기 모습.

구글 딥마인드는 바둑 AI 알파고에 이어 게임 전용 AI 알파스타를 개발했다. 딥마인드는 알파스타가 '스타크래프트2' 배틀넷(온라인 대전)에서 '그랜드 마스터' 레벨(상위 0.2% 해당 플레이어)에 올랐다고 지난달 31일 과학 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사진은 알파스타의 경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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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80년대 뉴럴 네트워크 연구자들은 소수파에 머물렀던 만큼 연구자금 확보가 어려웠다. 그러나 혁신을 주도한 이들에게 후원자들이 뒤따랐다. 이들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힌튼은 1981년 어느 날 새벽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기업가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기업가는 '유망하지만 성공할 확률이 낮은 모험적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고 싶어했다. 힌튼은 통화 중 세즈노스키가 수행 중인 연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자기의 연구보다 세즈노스키의 연구가 더 성공할 확률이 낮다고.


이후 힌튼과 세즈노스키는 생애 첫 연구 지원금을 받는다. 성공가능성이 희박한 모험적 시도에도 기꺼이 참여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딥러닝 레볼루션

테런스 세즈노스키 지음

안진환 옮김

한국경제신문

2만5000원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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