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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월드컵] 웅크리다 한방 '말벌축구'…세계 무대서 통했다

최종수정 2019.06.12 11:50 기사입력 2019.06.1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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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주관대회 첫 결승행 男축구
개인기술·조직력·체력까지 경쟁팀과 대등히 맞서
1948년 런던올림픽서 첫 태극마크 韓축구
우승 땐 국제대회 도전 70년 만의 쾌거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최준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최준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4강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환호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김흥순 기자]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83년 6월12일, 붉은악마가 멕시코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박종환 감독이 지휘한 20세 이하(U-20) 대표팀이 이곳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현 U-20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2-1로 물리치고 4강에 오른 것이다. 외신에서는 조직력과 기동력으로 일사불란하게 상대를 에워싸고 공격해 나가는 우리 선수들을 가리켜 '벌떼축구'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체격과 기술이 열세인 우리 선수들은 체력을 무기로 상대보다 빠르게, 많이 뛰면서 투혼으로 맞섰다. 빨간 유니폼을 입고 축구 강호들을 연파하자 '붉은악마'라는 별칭도 생겼다.


정정용 감독이 지휘하는 U-20 대표팀은 12일 폴란드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서 결승에 올라 36년 전 선배들의 업적을 뛰어넘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때 걸음마를 떼 유럽 주요 리그에서 활약하는 우리 선수들을 보며 꿈을 키운 스무살 청년들은 개인기술과 조직력, 체력까지 경쟁팀들과 대등하게 맞서며 우승 문턱에 다다랐다.


◆'벌떼축구'보다 강한 '말벌축구'= 대표팀은 후방에서 수비를 단단히 하면서 상대를 우리 진영으로 유도한 뒤 조직적으로 공을 빼앗아 날카로운 패스로 한 방을 노리는 전술로 효과를 극대화했다. 독침 한 방으로 상대를 쓰러뜨린다는 의미로 '말벌축구'라는 이름도 붙였다. '벌떼축구'보다 선수들의 기량이 진화하고 2016년부터 2년 넘게 호흡을 맞춘 탄탄한 팀워크로 대표팀은 경기마다 상대팀을 간파하는 맞춤형 전술을 구사했다.


에콰도르와의 4강전에서 나온 결승골도 여기서 비롯됐다. 전반 39분 미드필드 왼쪽에서 프리킥을 얻어내자 이강인(발렌시아)이 키커로 나섰다. 이강인의 주무기는 날카로운 왼발. 상대 선수들은 골문 근처로 긴 패스가 날아들 것을 예상하고 페널티박스 중앙 부근으로 쏠렸다. 이때 이강인은 눈빛으로 상대 선수들을 교란한 뒤 페널티박스 왼쪽으로 쇄도하는 최준(연세대)에게 낮고 빠르게 패스했다. 순식간에 골키퍼와 맞선 최준은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으로 반대편 골 그물을 흔들었다. 최준은 "(이)강인이와 계속 눈을 마주치면서 공간을 봤고, 패스가 그쪽으로 왔다"며 "에콰도르의 수비가 측면 공세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분석을 통해 알아냈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16강전(5일·1-0 승)도 비슷했다. 전반 내내 볼 점유율 28-72로 웅크리며 경기하던 대표팀은 후반 들어 발이 빠른 공격수 엄원상(광주)을 교체로 넣고 상대 측면을 공략해 나갔다. 결국 후반 39분 왼쪽 크로스에 이은 오세훈(아산)의 헤딩 결승골로 승리를 따냈다. 가게야마 마사나가 일본 감독은 "한국이 포메이션이나 경기 스타일을 후반 들어 갑자기 바꿨다"며 "이에 대응하려고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U-20월드컵] 웅크리다 한방 '말벌축구'…세계 무대서 통했다


◆세계 중심까지 70년…'제2 르네상스'= 한국 축구대표팀은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무대에 나섰다. 당시 16강전에서 멕시코를 5-3으로 이긴 우리 대표팀은 8강전에서 스웨덴을 만나 0-12로 졌다. 이후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는 헝가리ㆍ터키를 만나 한 골도 넣지 못하고 각각 9골, 7골을 실점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당시 우리팀의 기록은 월드컵 한 대회 최다 골득실(-16), 한 경기 최다실점·점수차(0-9 패) 등 세계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다만 아시아에서는 일찌감치 두각을 보였다. 1956년 홍콩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컵에 이어 4년 후 제2회 대회에서도 연거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전쟁이 끝난 후 이듬해 참가했던 제2회 아시안게임부터 세 대회 연속 준우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본선에서는 처참히 졌지만 스위스월드컵 역시 아시아 예선에서는 일본을 꺾고 진출했다. 당시 해방 후 처음 열린 한일전은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열려야 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일본 대표팀의 입국을 거부해 일본에서만 두 차례 치른 터라 기쁨이 더 컸다.


1983년 청소년축구대회 당시 '동생'격인 청소년 국가대표팀의 선전이 온 국민을 들뜨게 했듯,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성인대표팀이 본선에서 이탈리아·스페인 등 강호를 격파하며 이변을 연출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당시 우리 성인대표팀은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홍명보 감독의 U-23 대표팀이 3·4위전에서 일본을 꺾고 동메달을 차지해 올림픽 출전 사상 최고 성적을 냈다. U-20 월드컵에서 우승까지 달성한다면 국제대회 도전 70여년 만에 세계축구의 중심으로 도약한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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