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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책 한 끼]임금주도VS이윤주도…文정부 '소주성'의 이론적 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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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베르트 스톡하머 외 지음 / 한성안 옮김 / 개마고원 / 1만8000원


[김효진의 책 한 끼]임금주도VS이윤주도…文정부 '소주성'의 이론적 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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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를 재소환했다. 케인스가 지적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근본위험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현했다는 탄식이 배경이었다. 케인스 이론은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교정하기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과 금융규제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케인스 이론이 당시 불어 닥친 바람처럼 강렬하고도 뿌리 깊게 주요 시장주의 국가들에 스며들지는 못했다. 케인스 식으로 방향을 틀지 않고 이미 구축된 나름의 방식으로 위기를 돌파해낸 사례, 어지간한 위기에는 끄떡하지 않는 기득권 자본 세력의 입김 등등이 두루 영향을 미쳤다. 케인스 이론이 재조명을 받긴 했지만 주류 경제학, 즉 신고전주의경제학에 의미 있게 대항하지는 못했던 배경이다.


이런 가운데 주목을 받은 것이 케인스식 접근방식의 특수성을 강조한 포스트케인스경제학이다. 성장하되, 소득분배가 핵심 역할을 하는 거시경제모형이 이 기반에서 다듬어졌다. 포스트케인스경제학은 '돈이 돈을 낳는' 금융시장을 자본주의 불안정의 잠재적 원천으로 간주한다. 호황과 불황의 경기순환을 유도하고 자산가격의 버블을 부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율 정책보다는 신중하게 기획된 거시적 규제강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엥겔베르트 스톡하머 영국 킹스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현대 포스트케인스경제학은 임금주도 수요 체제와 이윤주도 수요 체제를 구분한다. 임금인상은 소비에 긍정적이지만 투자에는 부정적이다. 임금주도 수요 체제에서는 소비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투자 및 순수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압도한다. 이는 임금인상이 전체 수요와 고용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이윤주도 수요 체제에서는 임금인상이 투자와 순수출을 약화시켜 수요와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대부분의 포스트케인스경제학자들은, 적어도 국내적으로 다수 국가의 경제가 임금주도형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는 게 스톡하머 교수의 설명이다.


포스트케인스경제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인플레이션의 원천은 해결되지 않은 분배의 갈등이다. 정부는 자본과 노동 간 분배의 타협을 포함한 사회적 타결을 지원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러므로 임금교섭기구(노동조합 등)는 유용한 사회제도다.


이 같은 논리를 그대로 연장하면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기조를 만나게 된다. 정부가 실험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포스트케인스경제학이 말하는 임금교섭기구의 확장판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소득주도성장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압축되는데, 이를 둘러싼 논란ㆍ논쟁은 결국 임금주도 수요 체제와 이윤주도 수요 체제가 대립하는 결과라고 포스트케인스경제학을 빌려 설명할 수도 있겠다.


스톡하머 교수는 포스트케인스경제학이 학문적으로 통합은 됐지만 경제학계 전체로 볼 때 아직 변방에 머물러있다고 진단한다. 몇몇 나라에서 다양한 교과서와 학술지, 학술단체를 갖춰 비교적 통일적인 지식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나 기존의 연구 성과 평가제도 등으로 경제학 사조가 협소해져 포스트케인스경제학자로서 학문적 경력을 쌓기가 한층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학술적으로 상당히 중요하고 도전적인, 보수적 관점에서는 '마이너'하고 위태로운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유럽 일부 대학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국제적 학문 네트워크 '리씽킹 이코노믹스' 구성원 다섯 명이 썼다. 스톡하머 교수가 이들 중 한 명이다. 리씽킹 이코노믹스는 성장론이자 분배론인 포스트케인스경제학처럼 다원주의적인 관점에서 경제학을 다시 생각하자고 촉구한다. 경제라는 방대한 영역을 한 가지 이론이나 관점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양한 전통과 사상에 근거한 학문들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리씽킹 이코노믹스는 스톡하머 교수가 소개한 포스트케인스경제학을 포함해 ▲마르크스경제학 ▲오스트리아경제학 ▲제도경제학▲페미니즘경제학 ▲행동경제학 ▲복잡계경제학 ▲협동조합경제학 ▲생태경제학 등 아홉 가지 경제학을 소개한다.


이들 경제학 중 협동조합경제학은 포스트케인스경제학 만큼이나 친숙한 느낌으로 읽어낼 수 있다. 시민사회가 주로 이끌었던 협동조합에 대한 실험이 현 정부 들어 한층 폭넓어지고 더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경제학 편은 몰리 스콧 카토 영국 로햄턴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썼다. 협동조합 이야기를 '경제학'으로까지 격상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 운동을 한다는 사람 대다수가 첫 단계에서 접하는 막연한 원칙과 이상주의적인 기대효과, 해외의 모범사례 등이 중등 수학의 개념서처럼 정리돼있다.


카토 교수는 협동조합의 이점 중 하나가 성장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깃발을 높이 들었던 여러 협동조합은 '성장'에 대한 조합원들 간의 인식차이로 전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민협동조합 FC바르셀로나가 '성장'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클럽이 될 수 있었을까. '모두가 주인'이라는 협동조합의 근본전제는 '주인이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포스트케인스경제학도 종국에는 '성장론'이 아니던가. 이 같은 질문이 꼬리 무는 것을 보면 리씽킹 이코노믹스가 다루는 주제들이 우리 경제사회와 맞닿는 대목이 많은 것 같다.


책은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주의경제학을 비판하거나, 비주류 경제학을 옹호하지 않는다. 비판의 대상이 있다면,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신고전주의경제학이 경제연구의 최일선에 별다른 저항 없이 자리 잡는 풍토다. 리씽킹 이코노믹스는 또한 지금의 주류 학파를 해체하거나 무언가로 대체하자고 주장하지 않으며 여러 학파가 상호 비판ㆍ견제하는 토양을 만들자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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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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