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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북카페] 오늘은 왠지 손편지가 쓰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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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1위 복귀…김훈 '연필로 쓰기' 9위 진입
2017년 4월 집계 이후 '소설' 없는 적 처음…시집도 전멸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손편지'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네이버' 뉴스 항목에서 손편지를 검색하면 가장 오래된 기사가 2005년 6월16일 자로 뜬다. 글은 시대를 반영한다. 손편지가 기사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2005년에는 인터넷과 전자우편이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연필로 종이에 쓰는 편지보다 키보드를 두드려 모니터에 쓰는 편지가 더 익숙해졌다는 뜻일 것이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새로운 형태의 편지 쓰기가 가능해지면서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으로 편지를 쓰는 행위는 좀 더 뚜렷하게 정체성을 드러낼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서 애꿎은 '손'이라는 단어가 사족처럼 따라붙었으리라.

전자메일의 등장으로 효용 가치가 없어질 줄 알았던 손편지는 텔레비전 시대의 라디오처럼 새로운 감수성을 전하는 수단이 됐다. 연인들이 주고받는 손편지 한 장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선물의 상징이 됐다.

[충무로 북카페] 오늘은 왠지 손편지가 쓰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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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훈이 새 산문집을 '연필로 쓰기'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27일 출간했다. 감성을 건드리는 듯한 제목 때문인지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글쓰기라고 하면 으레 소설이나 시 등의 문학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번 주 충무로 북카페 베스트셀러 순위 집계에서는 소설과 시가 전멸했다. 문학이 사라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연필로 쓰기'라는 제목이 묘한 느낌을 준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팔린 책을 대상으로 베스트셀러 순위를 매겼다. 교보문고·인터파크·예스24 등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의 판매량 순위를 참고하되 본지 문화부 기자들의 평점을 더해 종합점수를 집계했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소설이 한 권도 포함되지 않았다. 2017년 4월 충무로 북카페를 통해 베스트셀러 순위를 집계하기 시작한 뒤 소설이 한 권도 포함되지 않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분야별로는 시·에세이가 네 권, 인문과 자기계발이 두 권씩, 경제·경영과 아동이 한 권씩이다. 지난주에는 시·에세이가 네 권, 인문과 자기계발, 소설이 두 권씩이었다.

시·에세이로 구분된 네 권은 모두 에세이여서 이번 주에는 시집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사라졌다. 나태주 시인이 '꽃을 보듯 너를 본다'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를 꾸준히 순위권에 진입시키며 고군분투했으나 그의 책이 4개월 만에 순위에서 빠졌다.


소설 판매는 지난해에도 부진했는데 올해는 더 심각해졌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설책 판매는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13% 감소했다. 지난해 연간 기준 소설 판매 감소율은 2%였다.


진영균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과장(39)은 "지난해에는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각각 100만부를 돌파했고, 야쿠마루 가쿠의 '돌이킬 수 없는 약속' 등 한국에 새롭게 알려진 일본 소설이 크게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올해는 아직 그런 사례가 없어 1분기 판매가 주춤했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과 '82년생 김지영'은 지난해 충무로 북카페 순위에서도 1위에 오른 책들이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기욤 뮈소의 '아가씨와 밤'이 4위(2월1일 집계)에 오른 것이 가장 높은 순위다.


이번 주 새롭게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은 세 권이다. '연필로 쓰기' 외에 '설민석의 세계사 대모험 1: 프랑스 혁명 속으로'와 '앞으로 5년 한국의 미래 시나리오'가 새롭게 진입했다. 대신 소설 두 권 '버선발 이야기' '인어가 잠든 집'과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가 순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문학이 비운 자리를 철학이 차지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가 1위에 복귀했다. 이 책은 3월8일 집계에서 1위였고 같은 달 29일 집계에서 3위로 밀렸다가 다시 왕좌를 차지했다. 지난 2월15일 집계에서도 2위였다. 두 달간 네 차례 집계에서 모두 3위 안에 들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철학 관련 서적이 이렇게 오래도록 인기를 끄는 것은 이례적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문학 책 중 읽을 만한 것이 없다는 뜻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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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은 새 소설 '마터 2-10'을 지난 10일부터 예스24의 문화 웹진 '채널예스'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연재가 끝나면 단행본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단행본으로 낼 책을 왜 굳이 온라인 채널을 통해 연재할까. 독자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지만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성향도 반영했다고 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글쓰기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연필로 쓰기'는 그 변화 속에서도 글쓰기의 본질과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김훈이 글을 쓸 때 여전히 연필을 고집한다는 것은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사실. 단문으로 정제된 그의 글은 연필로 쓰는 행위와 결부돼 묘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키보드에 익숙해지면서 요즘은 손에 펜을 쥐는 경우가 거의 없다. 키보드로 글을 쓰고 지우는 행위를 연필로 쓰고 지우개로 지우는 행위보다 덜 고된 노동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 시대의 글쓰기가 지나치게 가볍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김훈은 책의 표지에 "나는 겨우 쓴다"고 적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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