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4월 내한을 이끄는 조나선 노트는 1962년 버밍엄 근교 솔리홀 태생의 영국 출신이다. 캠브리지에서 합창단원으로, 맨체스터 로열 노던 컬리지에서 플루트를, 런던에서 지휘를 배웠다. 성악, 기악을 놔두고 노트가 집중한 건 지휘였고, 향한 곳은 현장의 도제 시스템이 남아있던 독일이었다. 본 지휘자의 리허설을 대비하는 연습 지휘, 전막 지휘자의 수정 사항을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담당하면서 오페라하우스가 돌아가는 구조를 체득했고 1989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의 카펠 마이스터(감독)가 됐다.
1990년대 후반 루체른 심포니, 2000년부터 16년간 재임한 독일 밤베르크 심포니, 2017년 1월부터 감독을 맡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까지 독일과 스위스의 저명 악단이 노트를 중용하는 이유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더 높은 수준의 음악을, 함께 찾아갈 수 있다는 신뢰와 믿음이 들어서다.
노트의 미덕은 설득력과 열정이다. 2011년 가을, 라벨 ‘다프니스와 클로에’ 단 한 곡을 함께 했지만, 이듬해 차기 음악감독으로 발령한 도쿄 심포니가 노트를 바라본 관점도 동일하다. 오페라극장에서 함양한 인화를 바탕으로, 본인 주관을 전달하는 방법이 명쾌하고 매끈하다. 그래서 노트와 리허설을 끝내면, 본공연까지 쉬는 시간에도 지휘자에게 받은 에너지를 온전히 유지하려는 단원들의 투지가 백스테이지에 넘친다. 2010년대 중반 일본 음악잡지 ‘음악의벗’ 비평가들이 뽑은 그해 최고 공연도 노트와 도쿄 심포니 차지였다. 한 때 시정부의 지원 축소로 파산 위기에 직면했던 스위스 로망드도 노트 영입으로 단원의 사기를 진작했고, 전환점을 맞았다.
“서울에서 공연할 말러 교향곡 6번에서 작곡가는 다음 시대의 음악을 예견했습니다. 대편성의 악기가 홀에 퍼지는 순간, 청중은 규모가 다른 소리의 세계를 체험하고 그 소용돌이에서 삶과 죽음을 명상합니다. 사운드를 통한 미지로의 여행이 제가 콘서트에서 함께 하고픈 최고의 가치입니다.”
스위스 로망드를 맡기 전에 이미 노트가 전문성을 인정받은 말러, 브루크너의 관현악들이 제네바에 새롭게 덧붙여지고 있다. 과거 앙세르메와 오네거의 조합처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갈피를 잡지 못한 시절 쓰인 20세기 작품들도 노트의 의지로 베베른, 쳄린스키부터 구체화 될 예정이다. 듣기 좋은 음악을 넘어, 성가대 시절부터 새로운 소리에 도전하고픈 영국 소년의 동심은 초로에도 이어진다. 노동자에서 성직자가 된 부친에게 왜 종교인이 되었냐는 질문을 평생 못했지만, 노트는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듣고 흘린 아버지의 눈물에서 답을 대신 얻었다. 지금은 고향을 등졌지만, 수구초심의 본심마저 져버리진 못했다.
“음악 인생 뿐 아니라 모든 삶에서 본 최악의 상황이 브렉시트입니다. 영국 지휘자가 스위스 오케스트라와 독일 작품을 한국에서 연주하는 일이 부자연스럽다고 시비를 거는 일입니다. 이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 기반에서 위대한 작곡가의 예술이 꽃필 수 있었습니다. 영국 예술이 처한 위기를 유럽도 방관만 할 순 없습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이미 지난 3월 제네바 빅토리아홀에서 스위스 로망드와 사전 연주를 마치고 슈만 협주곡을 준비한다. 슈만은 낭만주의나 특정 사조에 가둘 수 없는 독특한 개별 언어로 세계를 완성해서 손열음이 특별히 아끼는 작곡가다. 학창 시절,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습실에서 동료들만 들을 수 있던 기가 막힌 독주곡들도 슈만 작품이 많았다. 독일로 유학 갈 생각을 미처 하지 않던 시절에도 손에 잡았던 헤세와 릴케의 시가 손열음의 예술 형질을 채웠다. 먼 미래를 구상하지 않아도 늘 곁에 있던 슈만의 편린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 자석처럼 슈만 협주곡이 손열음의 손에 붙었다. 단기간에 다작을 이뤘지만 슈만의 개개 작품은 높은 순도를 유지한다. 언뜻 이해가 어려운 음악사의 불가사의도 손열음이라면 명쾌하게 풀어내지 않을까?
한정호 객원기자ㆍ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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