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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sts] 때를 놓친 사랑은 재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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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호 시집 『세상의 모든 연애』

[Latests] 때를 놓친 사랑은 재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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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라면 누구나 연가집을 꿈꾼다. 괴테가 그랬고, 릴케가, 네루다가 그랬다.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도 궁극적으로는 한 편의 연가다. 연가는 받아쓰는 것이다. 사랑을 행하는 주체는 ‘나’인 듯하지만, 실은 ‘사랑’이 나를 급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운명을 직감하게 하며 열병을 앓게 만든다.


어떠한 시련이나 난관도 사랑에 휩싸인 자에겐 그저 하찮을 뿐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이미 천국에 이르렀고 역경은 차라리 구원의 약속일 따름이다. 사랑에 수몰된 자에게 모든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일들이 우주적인 의미를 지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사랑은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신의 계시로 전치시키며 단 한 번의 미소만으로도 생 전체를 충만하게 한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사랑은 극히 잠깐 행복을 속삭이고 이내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사랑은 자신의 그림자를 통해 스스로를 입증한다. 그것은 비탄과 절망 속에서 더욱 굳건해지며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탄생시키고 마침내 현재와 미래마저 잠식한다. 요컨대 사랑은 부재로서 자신을 완성한다.


“당신이 없는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곧 글쓰기의 시작이다.”(롤랑 바르트) 그렇다. 진정한 연가는 환원 불가능한 상태의 지속이며 매 순간 죽음을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나 놀라워라, 연가는 바로 그 순간 시작한다. 사랑은 그것의 소멸을 통해 끊임없이 재림하며, 연가는 그때 비로소 불멸의 기록으로 갱신된다.


전윤호 시인은 『세상의 모든 연애』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적었다. “때를 놓친 사랑은 재난일 뿐이다”!(「수몰 지구」) 이 문장을 올바르게 번안하자면 ‘이제야 정녕 사랑이 시작되었다’일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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