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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온유의 느·낌·표]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2

최종수정 2019.03.22 15:51 기사입력 2019.03.2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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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온유의 느·낌·표]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2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고등학교에 다닐 때 별명이 '제물포'인 선생님이 계셨다. 제물포는 '쟤 때문에 물리 포기했다'의 줄임말인데, 그분은 머리숱이 적고 꽤 신경질적인 선생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물리를 배우지 않는 문과 학생이라 그분을 잘 몰랐는데도, 쉬는 시간에 멀리서 "제물포다! 제물포다!"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친구들과 우르르 교실 안으로 피하곤 했다. 참 철없던 시절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제물포 선생님은 물리가, 과학이 어려운 우리에게 일종의 핑계거리 되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이라고 하면 '어렵다'고 느끼는 게 한국인의 자연스러운 반응인데, 이건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 관장도 동의한 사실이다. 그가 쓴 책 제목부터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2'이니까 말이다. 과학 행정가인 저자는 과학의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과학을 통해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 그리고 명랑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행복과 과학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일까.

저자가 나 같은 독자를 이해시키려 펼친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잠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왜 잠을 잘까. 몇 가지 이론이 있다. 기억을 정리하는 과정이라는 주장도 있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적응이라는 설도 있다. 저자는 "물론 이것들도 잠의 역할이지만 주요 기능이라기엔 뭔가 부족하다"며 2013년 10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미국 로체스터 의과대학 연구진의 논문을 소개했다.


논문은 "잠을 자지 못하면 뇌에 노폐물이 쌓여 탈이 나기 때문에 모든 동물은 잠을 잔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노폐물은 기억과 정보뿐 아니라 실제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도 포함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연구를 근거로 더 많은 돈을 벌려 노동자의 수면 시간을 줄이는 한국 사회의 풍토를 꼬집었다. 더 이상 안전을 위한 비용을 아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과학 행정가인 저자의 사회학자적 면모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과학과 사회를 연결하려 부단히 애썼다. 다들 한 번쯤 '마시멜로 실험'을 들어봤을 테다. '눈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10분 있다 먹으면 마시멜로 하나를 더 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집어먹은 아이보다 기다렸다 먹은 아이가 미래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유명한 실험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실험이 변수가 너무나도 많은 이 사회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제시된 것이 뉴욕대 UC 어바인대의 연구다. 연구팀은 마시멜로 실험에서 보인 아이의 인내심이 엄마의 학력(가정의 경제력)과 관련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엄마가 대졸 이상인 경우 68%가 인내심을 발휘한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 45%만 참는 데 성공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간식을 먹은 아이들은 미래 보상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인내심과 성공'의 상관관계가 주목 받은 첫 번째 마시멜로 실험과는 다른 결론이 나왔다. 저자는 "명랑한 사회가 되려면 미래 보상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며 "시민, 특히 젊은이들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과학 행정가로서의 역할도 잊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면 저자가 늘 받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쯤 노벨상을 받게 될까요?" 그의 대답은 늘 하나였다. "앞으로 15년 안에는 없을 겁니다." 과학자들에게 실패할 틈을 주지 않는 한국의 연구 풍토를 보고 있자면 노벨상은 어림도 없다는 말이었다. 그는 "우리도 실패를 거듭하는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2/이정모 지음/바틀비/1만5000원>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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