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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의 On Stage] 100년 전 달에 도달코자 했던 6펜스의 삶

최종수정 2019.03.21 11:57 기사입력 2019.03.21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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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달과 6펜스'…서머싯 몸의 동명 소설에서 모티브
그림에 탐닉한 광기 어린 '모리스' 통해 예술의 의미 물어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올해는 서머싯 몸이 소설 '달과 6펜스'를 출간한 지 100년 되는 해다. 몸은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 끝난 이듬해 광기 어린 삶을 산 화가 '찰스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뮤지컬 '달과 6펜스'는 소설 달과 6펜스를 모티브로 탄생한 창작 뮤지컬이다.


파도가 치는 어느 섬. 친구 케이가 모리스를 찾아왔다. 무릎을 꿇은 모리스 앞에 그림 하나가 있다. 케이는 모리스의 손가락을 감은 붕대를 보고 놀란다. 모리스가 섬뜩한 광기를 보여준다. 코끼리, 닭, 생쥐 뼈에서도 원하는 색을 찾지 못해 손가락 두 개를 잘랐다고 말한다. 소설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가 연상된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마흔 살에 잘 다니던 직장(런던 증권사)을 관두고 가족까지 버리고 파리로 건너간다. 끝내는 태평양의 외딴 섬 타히티에 정착해 그림을 그리다 생을 마감한다. 타히티에서 스트릭랜드는 문둥병에 걸리고 시력까지 잃지만 그림에만 몰두한 덕분에 필생의 걸작을 완성한 뒤 삶을 마감한다.


모리스도 자신의 손가락을 희생해 스트릭랜드처럼 걸작을 완성한 다음 그림과 함께 불길 속으로 사라져 생을 마감한다. 손가락을 자른 모리스는 노래한다. "그림 속에 모든 것을 던지려 해. 재가 되어 사라질 몸이라면 색이 되어 그림이 되길 원해."


달과 6펜스 제작진은 극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삶보다 예술을 앞세웠던 모리스를 통해 우리 삶에서 예술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다. 뮤지컬이 철학적인 질문을 담았기에 난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티브가 되는 소설의 전체적인 얼개만 알고 있다면 뮤지컬의 매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뮤지컬 '달과 6펜스'의 한 장면

뮤지컬 '달과 6펜스'의 한 장면


소설은 건강, 재산, 가족을 모두 내팽개치고 오직 그림만을 탐닉한 한 인간의 이야기다. 6펜스짜리 삶을 살면서 달이라는 이상을 꿈꾸었던 사람의 이야기다. 스트릭랜드가 그림 하나만 보고 달려간 탓에 소설에서 다른 인물들은 부각되지 않는다. 소설은 철저하게 스트릭랜드 위주로 전개되며 다른 인물들은 스쳐가는 인연 정도에 그친다. 소설을 다 읽었을 때 스트릭랜드 말고 다른 인물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뮤지컬은 이 부분이 소설과 크게 다르다. 모리스 주변 인물들인 유안과 미셸은 점점 모리스의 매력에 빠져든다. 특히 유안은 인물 성격의 변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래서 모리스보다 오히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며 실질적인 주인공 역할을 한다. 소설에서 스트릭랜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후원하는 동료 화가 '더크 스트로브'가 유안의 모델이다.


유안은 엘리스 미술 교육을 받아 본능에 따라 그림을 그리는 모리스와 정반대의 삶을 산 인물로 설정된다. 모리스는 유안에게 '학교에서 예술을 가르치나?' '예술에 교육이 필요해?'라고 물으며 "입 닥치고 그리면 돼"라고 강변한다. 모리스에게 예술은 한 순간의 충격과 느낌, 자유만 있으면 되는 단순한 일이다.


틀에 갇힌 그림을 그렸던 유안은 점점 모리스에 동화돼 간다. 극에서는 옷차림을 통해 동화되는 모습이 구체화된다. 유안은 처음에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나오지만 점점 자켓, 스카프, 조끼를 벗어던지고 셔츠가 바지 바깥으로 삐져나와도 신경 쓰지 않으며 물감으로 엉망이 된 코트만 입고 다니는 모리스와 닮아간다.

뮤지컬 '달과 6펜스'의 한 장면 [사진= 프로스랩 제공]

뮤지컬 '달과 6펜스'의 한 장면 [사진= 프로스랩 제공]


유안은 모리스를 좇아 섬까지 따라가며 그 역시 원하는 붉은 색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손목을 긋는 광기를 보여준다. 그의 아내인 미셸은 유안과 달리 모리스에 동화되는 모습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이제는 돈을 지불하면 (물론 거액이지만) 진짜 달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몸은 100년 전에 인간이 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썼을까. 조르주 엘리스가 SF 영화의 효시라는 '달나라 여행'을 만든 해가 1902년임을 감안하면 몸의 상상력은 1919년에 이미 달에 가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달이라는 이상적인 세계가 실제로는 욕망 덩어리일 뿐이라면? 달에 도달한들 결국 6펜스짜리 삶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달과 6펜스가 계속해서 읽히고 이처럼 뮤지컬로 변주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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