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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장미 다시 꽃피다

최종수정 2020.02.03 15:55 기사입력 2019.01.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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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유호정

[라임라이트]장미 다시 꽃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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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공장에서 일하며 가수 꿈꾸던 장미, 굳센 생활력으로 딸 키우는 억척 아줌마로
"이혼 뒤 홀로 자매 키운 엄마 생각 많이 나...노력해도 돌아가신 엄마 김치 맛 못 따라가"
극 중 딸 현아 "엄마, 호강시켜줄게" 위안…일·살림 병행 "남편 이재룡씨가 많이 도와줘요"

"장미 꽃 한 송이, 그대의 옷깃에 꽃아 주면 너무나 어울려.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그대 모습은 장미'에 심취한 아주머니. 장단에 맞춰 당실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넌다. 두 손으로 녹즙기 상자를 들고 있지만 발걸음이 경쾌하다. 신호가 바뀐 줄도 모르고 어깨를 들썩인다. 지나가려던 차가 급정거한다. "신호 바뀐 거 안 보여?" 아주머니는 삿대질로 응수한다. "사람 지나가는 거 안 보여?"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언성을 높이지만 이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운전자 뒤에 있는 아저씨의 얼굴이 낯익다. "장미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택시! 갈게."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는 억척스러운 아주머니 장미의 화려했던 과거를 조명하는 드라마다. 유호정(50)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써니(2011년)'에서도 찬란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칠공주 '써니'로 활동하며 친구들과 쌓은 추억이다. 이번에는 온전히 장미의 인생 발자취를 더듬는다. 미싱 공장에서 일하면서 가수를 준비한 1970년대와 칡넝쿨같이 줄기찬 생활력으로 딸 현아(채수빈)을 키운 1990년대다. 유호정은 "2004년 간암으로 돌아가신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어머니를 연기했지만 딸에게 감정 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엄마가 장미 같은 인생을 사셨거든요. 저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을지 생각하니까 눈물이 핑 돌았어요. 예순네 살에 돌아가셨어요. 10년만 더 함께 했다면 좋았을 텐데.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못했어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스틸 컷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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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한 딸이었나요.
"네. 초등학교를 다닐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엄마가 저와 여동생을 홀로 키우셨죠. 무척 엄하셨어요. 그 흔한 '우리 딸, 예쁘다'라는 말조차 안 해주셨죠. '우리 엄마는 왜 그럴까'라고 생각하면서 저 또한 내성적으로 변했죠. 마음속으로 많이 다짐했어요. 나중에 아이들을 낳으면 하루에 사랑한다는 말을 100번씩 해주겠다고요."
-어머니께서 모진 세월을 힘들게 버티신 듯하네요.
"집 안팎에서 치열하게 사셨어요. 저와 여동생이 아버지 없이 자랐다는 말을 들을까봐 철저하게 교육하셨죠. 돌아가신지 10년도 넘었지만 많이 생각나요. 특히 엄마가 해줬던 음식을 먹을 때요."

-특별히 기억하는 음식이 있나요.
"김치요. 한동안 시어머니께서 해주셨는데, 엄마의 맛이 그립더라고요. 이전에 들었던 비법대로 직접 담그고 있어요. 아무리 애를 써도 엄마가 냈던 맛을 따라가지 못하겠어요. 그 맛을 기억해내는 스스로에게 놀라곤 해요. 음식이 곧 추억인가 봐요. 그래서 김장을 할 때마다 자꾸 친구들을 부르는 것 같고요. 겉절이에 수육을 곁들여 매번 파티를 열어요."

영화 '써니' 스틸 컷

영화 '써니'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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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에서 친구들이 한데 모이는 신이 떠오르네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도 써니가 많이 떠올랐어요. 내용은 달라요. 이 정도로 모성애를 표현한 작품은 없었죠.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모든 이들의 감성을 흔드는 소재인 듯해요. 오래 전부터 그려보고 싶었어요."

-작위적인 어려움이 자주 등장해요.
"60대 이상의 어머니들은 공감하실 걸요. 대부분이 자식을 위해 한평생을 헌신하셨거든요. 저희 엄마도 그런 분이셨고요. 그래서 연기하기가 힘들었나 봐요. 영화에서 현아가 '엄마, 내가 호강시켜줄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연기인 걸 알면서도 위안이 되더라고요. 억척스럽게 살아온 세월을 보상받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엄마가 자꾸 떠올랐나 봐요. 현아처럼 잘해드리지 못해서요."

-장미와 달리 꿈을 이루고 아이들까지 키우고 있어요.
"인복이 많은가 봐요. 운도 많이 따라주고요. 1995년에 이재룡(55)씨와 결혼했어요. 그때만 해도 결혼한 여배우는 멜로 연기를 할 수 없었어요. 결혼이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죠. 그런데 그 무렵 '미시족(결혼을 하지 않은 아가씨처럼 젊고 세련돼 보이는 유부녀)'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엄마들이 늘었죠. 그 덕에 저도 연기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지금은 상황이 더 좋아졌죠. 저보다 나이 많은 선배들도 멜로 연기를 하시니까요. 시대가 참 빠르게 변하는 듯해요."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스틸 컷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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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응원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거든요. 이재룡씨가 어려움을 이해하고 일정을 잘 조율해줬어요. 제가 일하러 나가면 집에 남아 아이들을 보살폈죠. 그 덕에 힘들고 지쳐도 불안하지 않았어요.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죠. 함께 작품을 하는 여배우들에게 권해요. 배우자를 가까운 곳에서 찾으라고요. 섭외가 완료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합류한 미혼 남자 배우가 누구인지부터 확인하고 알려주죠(웃음)."

-그래도 아이들이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을까요.
"그래서 작품을 마칠 때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요. 이제는 아이들이 먼저 기대하더라고요. '촬영, 이제 한 달 남았네'라고 문자를 보내요. 작품을 마치고 무얼 할지 정하느라 쉴 새 없이 문자를 주고받죠. 딸내미는 놀이공원이나 찜질방 같은 곳을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스틸 컷

영화 '그대 이름은 장미'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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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룡씨와 함께 연예계 잉꼬부부로 꼽혀요.
"부담스러운 수식어죠. 저희도 싸울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도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해서 많이 힘들었어요. 특히 신혼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요즘은 거의 충돌하지 않아요. 서로를 너무 잘 알아서 그럴 일이 없어요. 상대가 무얼 싫어하고 좋아하는지 아니까 알아서 맞춰가죠."

-어느덧 결혼 24년차네요.
"이제는 집안에서 제가 가장 작아요. 아이들을 올려다보며 세월이 빠르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더 즐겨야죠. 조금만 더 지나면 각자의 삶을 살아갈 테니까요. 그때까지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려고요. 장미처럼요.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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