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 2.4%…포퓰리즘 예산안에 더 커진 이탈리아 리스크(종합)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가 27일(현지시간) 밤 로마에서 진행된 각료회동에서 내년 예산안을 포함한 경제재정계획에 합의한 후 발코니에 나와 환호하고 있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권인 이탈리아 정부가 진통 끝에 내년부터 3년간 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2.4%로 합의했다. 가뜩이나 빚더미에 올라선 상황에서 기본소득 도입ㆍ감세 등 포퓰리즘 공약 이행을 위해 당초 계획보다 지출을 대폭 늘리기로 한 것이다. 유로존 부채규모 2위국인 이탈리아발 재정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한층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27일(현지시간) 밤 각료회동에서 이 같은 방침을 반영한 2019년 예산안을 마련했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2.4%로 유럽연합(EU)이 권고한 예산규정인 3% 이하를 준수했지만, 시장에서 마지노선으로 평가해 온 2%를 훨씬 상회한다. 전임 정권이 내년 목표치로 설정한 기존 재정적자 비율(0.8%)의 3배 수준이기도 하다.

이번 합의는 재정지출 확대를 반대해온 조반니 트리아 이탈리아 재정경제장관과의 11시간 이상에 걸친 대치 끝에 이뤄졌다고 FT는 전했다. 경제학 교수 출신이자 대표적인 긴축파로 꼽히는 트리아 장관은 그간 "국가부채가 하향곡선을 그리는 예산을 짤 것"이라며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1.6%이하로 제시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긴축파의 주장은 경제성장과 선거공약 이행을 위해 과감하게 재정적자를 늘려야한다고 밝혀 온 극좌 오성운동-극우 동맹당 포퓰리즘 정권의 공세에 결국 밀렸다. 오성운동과 동맹은 트리아 장관을 비롯한 재정경제부 관료들의 경질·숙청 의지를 내비치면서까지 재정지출 확대를 요구해왔다.

포퓰리즘 정권의 실세인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라며 "이탈리아가 변했다. 역사상 최초로 국가가 빼앗아가는 게 아니라 무엇인가를 주게 됐다"고 자축했다. 다음 달 EU집행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확정되는 내년 예산안에는 포퓰리즘 정권의 주요 공약이자 기본소득 정책인 보편적시민소득 도입을 위해 100억유로가 반영됐다. 단일세율 도입을 통한 감세,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대규모 정비 등을 위한 예산도 포함됐다.

포퓰리즘 정권의 첫 예산안을 둘러싼 우려는 지난 6월 정권 출범 당시부터 제기돼왔다.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하고 이는 재정건전성에 직격탄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2021년까지 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2020년 균형재정을 목표로 했던 전임정권와 차이가 크다.

특히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의 부채규모는 GDP 대비 131%로, 최근 8년만에 구제금융 체제에서 벗어난 그리스에 이어 두번째로 높다. 재정적자를 둘러싼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포퓰리즘 정권의 반EU성향 등과 맞물려 2012년 재정위기에 이은 또 다른 유로존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는 이유다. 당장 EU집행위원회가 이탈리아의 예산안을 거부할 경우 국채 신용등급 등에 여파가 불가피하다. 하반기 그리스의 채권 발행계획과 연계돼 금융시장도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FT는 "(긴축을 요구해 온)EU와의 갈등은 물론,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AP통신 역시 "시장의 패닉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날 유로화는 약세를 나타냈고, 이탈리아 국채금리는 급등했다. 시장의 우려가 그대로 반영됐다는 평가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