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 부럽지 않은 전경…반원형 책장엔 5000권 서적 빼곡해
독특한 방식으로 분류해 책 고르는 재미 쏠쏠
다른 도서관·서점에서 볼 수 없던 보석 같은 동화책 가득
감상평 글·그림으로 남기는 공간도…가족 고객 유치로 백화점 매출 두자릿수 신장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가끔씩 스스로 모성애를 의심할 때가 있다. 퇴근한 후 안방에 숨어 책을 읽을 때다. 요즘엔 600쪽이 넘는 경제학책에 도전하고 있다. 연필로 밑줄 쫙쫙 그어가며 읽고 있으면 어느 새 딸 아이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엄마 심심해요"라며 입을 삐죽 내민다. 얼굴엔 '당장 나랑 놀아줘, 안 그럼 운다?'라고 써 있다. 그런 아이를 앞에 두고도 내 시간이 아까워 당장 책을 덮지 못하는 나는 '너 엄마 맞냐'며 자문한다.
다섯살 난 딸은 요즘 글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꿋꿋하게 책을 보고 있는 내 옆에 앉아 자신의 이름 세 글자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치곤 한다. 책에 남겨진 동그라미 향연의 흔적을 지우개로 빡빡 문질러 없앤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젠 엄마 책엔 관심 끄고 네 책을 보자. 매일 새 책을 구해줄 순 없으니 이번 주말엔 도서관에 가는 게 좋겠다. 아빠 반바지도 사야 해서 백화점도 들러야 하는데. 두 군데를 돌려면 일정이 빡빡하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언젠가 들었던 현대백화점 판교점의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이 머릿속에 스쳤다.
5000권의 책이 빼곡히 정리된 반원형 모양의 책장이 둘러싼 공간 안엔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의 분류 방식. '춤추는 이야기' '울퉁불퉁 이야기' '다름에 관한 이야기' ' 땅에서 일어난 이야기' '하늘에서 일어난 이야기' 등등 각 칸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분류한 이름표들이 걸려있었다. 우리 딸이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수준이었다면 같이 책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아빠 생각'이라는 그림책을 골라 딸아이와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소리 내서 읽어 줄 수 있다는 것도 이곳의 장점이다. 책을 펼치니 이 도서관이 가진 매력이 더 와 닿았다. 아빠가 식사를 만들어주지 않은 지 오래됐고, 학교에 데리러 오지 않은 지 몇 주 됐다. 그림을 그려 가면 아빠는 '녀석 많이 컸네'라며 토닥여주기만 할 뿐. 급기야 교도소 담장 밖으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림과 함께 '말은 못했지만 아빠가 폭삭 늙어버렸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됐다.
"이게 끝이야?" 뜨악한 나와 남편은 프랑스 작가가 쓴 책 소개를 읽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강탱의 이야기는 지구상 어떤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세상의 어떤 아이도 아빠와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우리나라에선 금기시될 만한 '감옥에 간 아빠'라는 주제를 이렇게 따뜻하게 풀어낼 수도 있구나. 딸 아이가 이 내용을 어렴풋이라도 이해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다시 한번 읽어주고 싶은 동화책이었다. 이곳엔 다른 곳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보석 같은 책들이 가득했다. 도서관 한 쪽엔 아이들이 감상평을 그림과 글로 남길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현대백화점이 '어린이책미술관'에 공을 들인 건 문화 콘텐츠를 앞세워 가족 단위 고객들을 모으기 위해서다. 명소로 소문나 판교뿐 아니라 경기도 원정 고객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덕분에 판교점 매출은 현대백화점 15개 전 점포 중 유일하게 두 자릿수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
단점은 너무 넓다는 것. '없는 브랜드가 없을' 정도라 매장마다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아 남편 반바지는 SPA브랜드에 가서 후딱 구입했다. 이곳에 오면 꼭 먹어야 한다는 이탈리아 아이스크림 밴키 젤라또를 손에 든 채로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 내내 우리 부부의 대화 주제는 '판교로 이사 가는 방법'이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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