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Encounter]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이 아닌 '별들'인 이유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번역계의 새로운 목소리' 이대식 새움출판사 대표

[Encounter]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이 아닌 '별들'인 이유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노태영 기자]독자들은 대부분 해외 문학 작품을 번역된 책으로 읽는다. 번역의 결과에 따라 원작은 전혀 다른 작품이 되어 독자의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평창길에 있는 새움출판사(새움)는 이 번역 작업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 곳이다.

새움은 지난달 5일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들'을 다시 번역해 내놓았다. 한국의 도데 독자들이 대부분 제목을 '별'로 알고 있는 작품이다. 제목이 왜 바뀌었는지 알기 위해 이대식(54) 새움 대표를 지난 2일 인터뷰했다. 그는 곧 출간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마무리 번역하고 있었다. 초벌 번역한 원고(A4 용지 수십 장)가 책상 위에 수북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도 빨간펜을 놓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인터뷰를 두 시간 넘게 하면서, 그는 간간히 창 밖을 내다보거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아주 힘든 일을 겪었다. 어찌 보면 단기필마로 겁없이 전장에 뛰어든 대가이기도 했다. 4년 전, 이대식 대표는 고립무원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 대표의 의견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경쟁자인 출판사들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언론이 등을 돌렸다.

이대식 대표는 2014년 '이정서'란 필명으로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번역본을 출간하며 기존 번역의 '오류'를 지적했다. 주인공 뫼르소가 태양빛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기존 번역을 소설의 개연성을 무시한 오역이라며 비판했다. 그는 이 부분을 "상대가 들고 있는 칼날에 비친 햇빛이 위협적이어서 정당방위로 죽였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과감한 주장은 출판ㆍ독서계를 발칵 뒤집었다.

이 대표는 "내가 책을 한권 더 팔려고 이방인 번역의 '정설'이라는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를 물고 늘어졌다는 식의 악의적인 주장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이 대표는 김화영 교수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답은 없었다. 그래도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언어의 차이가 있으니 의역을 할 수밖에 없다는 통념은 직역이 기본이라는 그의 공격에 크게 흔들렸다.
김종면 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는 지난해 11월 한 일간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새움출판사의 취지는 맞다. 오역이 의역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대식 대표는 "직역을 통해 앞 뒤 맥락을 보면 어떤 단어도 오해할 이유가 없다. 번역은 답이 하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등을 번역하면서도 비판적 태도를 지켰다.

[사진=노태영 기자]

[사진=노태영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이 대표는 번역 중인 노인과 바다의 한 부분(Stay at my house if you like, bird," he said. "I am sorry I cannot hoist the sail and take you in with the small breeze that is rising. But I am with a friend.)을 예로 들었다. 대개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새야, 네가 좋다면 우리 집에 머물러도 좋아. 지금 미풍이 불고 있는데 돛을 올리고 너를 뭍까지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해. 하지만 나는 지금 친구와 함께 있단다." 노인이 말했다.'

새움은 다르다. '"네가 좋다면 내 집에 머물렴, 새야." 그는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돛을 올리고 지금 일고 있는 산들바람으로 너를 데리고 갈 수 없구나. (왜냐하면) 나는 친구와 함께 있거든."' 이 대표는 "헤밍웨이는 'and'와 'but'를 자주 사용한다. 여기에서 but은 '왜냐하면'(because)"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노인이 낚시에 걸린 물고기와 그 줄 위에 앉은 새를 대하는 태도를 설명하고 있다. 노인의 '캐릭터'"라고 했다.

그의 집요함은 제목도 간과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단편소설로 알려진 별은 도데가 1869년에 쓴 연작소설 '내 풍차 방앗간 편지들'의 한 부분이다. 도데가 붙인 제목(Les etoiles)은 정관사까지 분명한 복수형이며 본문에서 다뤄지는 다양한 별들과 별자리들에 대한 설명과 묘사를 생각할 때 단수형은 용납해서는 안 되는 오역"이라고 단언했다.

이 대표는 '제대로 된' 번역가들이 번역서를 내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지난 2월 새움출판사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새 번역자를 모집했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소년(boy)의 나이를 정확하게 설명하면 원하는 세계 고전 문학 작품을 번역 출판할 기회를 준다는 조건이다. 이 대표는 "맞힌 지원자는 없었고 모두 의역에 길들어 있었다. 그래도 가장 가깝게 번역한 사람과 계약을 했다"고 귀띔했다.

그에게 꿈을 물으니 "번역은 다른 훌륭한 분들에게 맡기고 내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정서라는 이름으로 여러 소설을 썼다. 지난 2월에 낸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가 가장 최근에 낸 소설이다.




노태영 기자 factpoet@asiae.co.kr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슈 PICK

  • “개저씨-뉴진스 완벽 라임”…민희진 힙합 티셔츠 등장 어른들 싸움에도 대박 터진 뉴진스…신곡 '버블검' 500만뷰 돌파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국내이슈

  • "딸 사랑했다"…14년간 이어진 부친과의 법정분쟁 드디어 끝낸 브리트니 공습에 숨진 엄마 배에서 나온 기적의 아기…결국 숨졌다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해외이슈

  • 이재용 회장, 獨 자이스와 '기술 동맹' 논의 고개 숙인 황선홍의 작심발언 "지금의 시스템이면 격차 더 벌어질 것" [포토] '벌써 여름?'

    #포토PICK

  • 1억 넘는 日도요타와 함께 등장한 김정은…"대북 제재 우회" 지적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