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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의 디스코피아 34] Bad Finger - No Dice(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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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류이기엔 아까운

Bad Finger - No Dice(1970)

Bad Finger - No Dice(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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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비틀즈'라는 평을 받은 밴드는 수없이 많다. 배드 핑거는 그 중 원조다. 애플레코드에 소속된 직속 후배인데다 4인조 록밴드였으니 당연하다. 애플레코드의 유력한 2선발 후보였지만 선배들과 원투펀치를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했던 이들에게 '노 다이스'는 중요한 앨범이었다. 데뷔작은 배드 핑거의 이름으로 발표됐지만, 전신인 디 아이비즈(The Iveys) 시절 녹음한 결과물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두 번째 앨범은 배드 핑거란 이름으로 만드는 첫 앨범이었다. 이 앨범을 만들며 조이 몰랜드(Joey Molland)를 영입하고 톰 에반스(Tom Evans)가 베이스로 포지션을 옮기면서 밴드의 라인업도 안정되었다.

하지만 이 야심찬 앨범은 슬픈 이야기들을 많이 남겼다. 우선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한창 앨범을 만들던 4월, 비틀즈의 해체라는 거대한 사건이 터졌다. 폴 매카트니와 조지 해리슨은 첫 솔로 앨범을, '노 다이스' 발표 한 달 뒤엔 설상가상 존 레논/플라스틱 오노 밴드(John Lennon/Plastic Ono Band)의 앨범까지 나왔다. 원조들이 연이어 출사표를 던지는 마당에 사람들은 제2의 비틀즈에게 쏟을 여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수록곡인 ‘위드아웃 유(Without You)’의 사연도 비극적이다. 피트 햄(Pete Ham)과 에반스가 함께 만든 이 달콤한 발라드는 어째선지 싱글로 발매되지 않고 앨범과 함께 잊혀지는 처지였다. 하지만 이 노래를 알아본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해리 닐슨(Harry Nilsson)은 배드 핑거에게서 ‘위드아웃 유’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들인 뒤 작업해 1972년의 빌보드 차트의 꼭대기에 4주나 점령했다. 밴드의 야심작이 엉뚱한데서 터진 것이다. MBC 프로그램인 ‘서프라이즈(2015년 2월 8일 방영분)’에서 다뤄지며 한국에서도 유명해진 이야기다.

밴드의 속은 쓰렸겠지만, ‘위드아웃 유’의 열매를 닐슨이 거둔 것을 단지 불운 때문이라 볼 수는 없다. 웅혼하게까지 느껴지는 거친 느낌의 보컬을 기타에 얹었던 원곡에 비해, 피아노를 중심으로 분위기를 예열시킨 뒤 감미로운 보컬을 얹은 닐슨의 편곡이 훨씬 대중적으로 어필했다고 보는 게 옳다.

주변의 이야기를 뒤로 한 채 음악을 듣고나면 차라리 이들이 애플레코드가 아닌 다른 레이블에 소속이었다면 배드 핑거 자체로서 주목받지 않았을까 싶다. 대중적인 접근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키려 애쓴 흔적이 잘 드러난다. 앨범을 여는 ‘아이 캔 테이크 잇(I Can’t Take it)’가 록밴드이 자아를 드러낸 곡이라면, 선배들의 첫 싱글과 동명인 ‘러브 미 두(Love Me Do)’는 대중적인 러브송. 싱글컷된 ‘노 매터 왓(No Matter What)’에선 낙차 큰 멜로디가 춤춘다. ‘배터 데이즈(Better Days)’나 ‘위어 포 더 다크(We're For The Dark)’는 저녁에 맥주 한 잔에 곁들이기 좋다. 여러모로 이 앨범은 아류라는 낙인이 찍히기엔 조금 아쉽다.
‘위드아웃 유’도 나름의 성공이라 볼 수 있다. 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의 커버를 비롯해 180회 넘게 리메이크되며 밴드의 지속적인 수입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애플레코드를 떠난 뒤 밴드가 돈 다툼 속에 해체하고 피트와 에반스가 자살하는 등 우울한 사건들이 밴드의 마지막 이야기를 채운다. 하지만 ‘노 매터 왓’ 역시 미국과 영국에서 각각 8위, 5위까지 올랐으니 ‘서프라이즈’에서 묘사된 것처럼 앨범 발표 당시에 대단히 비참한 건 아니었다. 아류 이미지 때문인지 가십 위주로 언급될 뿐 자주 선택되지는 않는 인상이지만 플레이리스트에 올려볼만한 앨범. ‘제2의 비틀즈’ 중에서도 원조는 있는 법이다.

■ '서덕의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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