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여든여덟 개를 눌러가며 피아노의 음역대를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 익살스러운 설명 뒤에 이어진 존 윌리엄스의 ‘슈퍼맨과 쥐라기 공원 테마’ 연주는 대규모로 편성된 오케스트라를 연상시켰다.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은 연주자 두 명은 수십 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연주 못지않게 풍성한 음향으로 공연장을 매웠다. 피아노 듀오 ‘워비앤패럴(Worbey&Farrell)’의 첫 내한 공연 현장이다. 워비와 패럴은 에딘버러 페스티벌 최고의 공연장 '어셈블리 룸스' 전석 매진,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들은 화려한 연주와 재치 있는 몸짓, 표정연기 등 건반 앞의 퍼포먼스로 전 세계의 시선을 사로 잡아왔다.
워비앤패럴은 2003년 여름 영국왕립음악원 졸업생인 스티븐 워비와 케빈 패럴에 의해 결성되었다. 샤도네이 와인을 몇 병 마신 끝에 지은 팀 이름은 원래 독일어로 '숙취'라는 뜻의 '캣천제머(Katzenjammer)'였다. 이들의 변화무쌍한 무대는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 클래식에서부터 재즈와 팝까지 다양한 장르가 준비된 프로그램에서부터 엿볼 수 있었다. 아람 하차투리안의 ‘치프라 칼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리베로 탱고’ 연주가 이어지자 살아 움직이는 리듬에 관객들의 몸이 들썩거렸다. 바흐의 ‘프렐류드 C장조’와 그들이 편곡한 리스트의 ‘카프리스’를 연주할 때는 객석 전체가 숨죽여 감상하는 진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 워비와 패럴은 음악을 기반으로 한 웃음 코드를 통해 객석과 함께 소통한다. 재미있는 설명을 통해 작품의 이해를 높이고, 왼쪽 상단에 카메라를 설치해 피아니스트의 고된 작업을 보여준다. 이들의 무대가 더욱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워비와 패럴의 신선한 연주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던 19일 공연 당일의 무더운 날씨마저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한국에서의 첫 번째 공연을 즐겁게 할 수 있어 감사하다’며 관객에게 인사를 전하는 겸손함, 공연 직후 관객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싸인을 해주는 친근한 모습까지도 인상적이었다. 워비와 패럴이 선보일 다음 공연소식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무수히 많아졌다.
이윤화 인턴기자 y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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