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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가 세계적 시인 네루다의 제자 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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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 - 칠레 시인 파블로 네루다 탄생 112주년과 영화 '일 포스티노'의 추억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내게로 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는 이렇게 시작한다. 시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네루다의 고백은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이유를 그 어떤 문장보다 간명하게 전달한다. 그렇게 언제인지 모르게 불현듯 시가 찾아온 이가 또 있었다. 그는 우편배달부 마리오 로뽈로. 1994년 영화 '일 포스티노'는 저명한 시인과 그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게 업무인 남자의 우정을 다룬다. 우편배달부에게 시를 가르치는 네루다는 낯설지 않다. 이 영화 속 네루다와 실제 네루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시를 통해 민중과 소통했고 불의한 권력에 저항했다.
12일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태어난 지 112년이 되는 날이다. 1904년 7월 12일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이름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라. 10대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시인의 길을 반대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파블로 네루다라는 필명으로 활동했고, 이 필명은 1946년 아예 법적인 이름이 됐다.

영화 '일 포스티노'

영화 '일 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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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는 시인이면서 외교관이었고, 정치인이었다. 영화 '일 포스티노' 속 네루다가 이탈리아의 외딴 섬에 살게 된 것도 정치적인 탄압 때문이었다. 네루다는 1945년 칠레공산당에 입당했고 1946년 상원의원으로 의회 연설에 나서 당시 곤살레스 비델라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네루다는 이 연설을 '나는 고발한다'라는 책으로 펴냈고 국가원수 모독죄로 지명수배 됐다.

'일 포스티노'의 원작 소설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당시 네루다의 정치적 행보를 보다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원작 소설은 칠레의 해안 마을 이슬라 네그라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곳은 실제 네루다의 집이 있는 곳이다. 정치적 탄압을 피해 이슬라 네그라에 머물고 있는 네루다는 젊은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에게 메타포(은유)를 가르치고 시를 쓰게 한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도움으로 연모하던 베아트리스에게 고백하고, 결혼에 성공한다. 그는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돼 이슬라 네그라를 떠난 뒤에도 계속 연락하며 우정을 나눈다. 이후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마리오는 목숨을 걸고 죽음을 앞둔 네루다를 찾아가 그의 곁을 지키고 군부독재가 시작되자 실종된다.

파블로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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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네루다도 1969년 칠레공산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지만 이듬해 살바도르 아옌데를 추대하고 후보에서 물러난다.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주프랑스 대사로 임명돼 파리에 머문다. 아옌데 정부는 최초의 선거에 의한 합법적인 사회주의 정권이었다. 아옌데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토지 국유화, 구리 광산 국유화, 대기업 국유화, 빈민아동 우유 무료급식 등의 정책을 펴나가며 지지를 얻지만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사회주의 정권을 좌시할 수 없었던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결국 1973년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아옌데는 숨지고 열흘 뒤 슬픔에 빠져 건강이 악화된 네루다도 세상을 떠났다.
스웨덴 한림원은 1971년 네루다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하며 그의 시가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운명과 희망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설득력을 갖췄다"고 했다. 네루다가 노래한 희망은 어떻게 됐을까. 우체부 마리오의 실종은 소설 속 얘기가 아니다. 피노체트의 집권 이후 공식 기록만 3197명이 숙청됐고 실제로는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는 1000여명 이상이고 10만 명이 고문으로 불구가 되고 100만 명이 국외로 추방됐다고 한다.

그의 시가 흩뿌린 희망이 움트는 데는 17년이 걸렸다. 17년 동안 권좌에 앉아 학살을 일삼던 피노체트는 집권기간을 연장하기 위한 1988년 국민투표에서 패한 뒤 시민들의 대통령선거 요구에 굴복하고, 1990년 선거에서 지면서 물러나게 된다. 이 역사는 네루다가 자서전에 쓴 것처럼 그의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는 "고통 받으며 투쟁하고, 사랑하며 노래하는 것이 내 몫이었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픔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중략) 눈물에서 입맞춤에 이르기까지, 고독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내 시 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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