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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흥행의 나쁜 공식]'살짝 표절'이 판치는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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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윤작가의 충무로 쏘다니기 - '검사외전' 관객몰이 들여다보니

사진 = 영화 '검사외전' 스틸 컷

사진 = 영화 '검사외전'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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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맞아 부모님과 함께 극장을 찾은 A양은 상영시간표를 보고 당황했다. 상영관이 9개나 되는 극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검사외전’과 ‘쿵푸팬더3’ 뿐이었기 때문. 평소 무협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함께 보려했던 ‘자객 섭은낭’은 오전에 단 한 차례 상영하고 있었다. 결국 A양은 발걸음을 돌릴 수 없어 부모님과 ‘검사외전’을 관람했다.

설 당일인 지난 8일, 전국 2300여개의 스크린 중 1773개의 스크린에서 ‘검사외전’을 상영했다. 이튿날인 9일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전국 1806개의 스크린에서 9422회 상영됐다. 같은 날 ‘쿵푸팬더3’의 상영 횟수는 3954회였고, 나머지 99편 영화의 상영 횟수는 4356회였다. ‘검사외전’ 한 편이 다른 모든 영화의 상영 횟수를 합친 것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 개봉 2주차 주말인 지난 14일 까지 1600여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8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골라보자는 취지에서 생긴 멀티플렉스지만 지난 설 연휴 기간 상영작품을 살펴보면 단관극장 시대로 돌아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각에선 ‘싱글플렉스’가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극장의 70% 이상이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타당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먼저 ‘검사외전’을 관람한 관객들은 ‘익숙하다’는 감상을 쏟아낸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간 검사 재욱(황정민)이 수감 생활 중 만난 미남 사기꾼 치원(강동원)과 의기투합해 자신을 이렇게 만든 검사 출신 국회의원 후보를 상대로 복수극을 펼치는 이야기는 지난해 하반기, 충무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베테랑’, ‘내부자들’로부터 이어지는 사회 비판적 정서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앞서 언급한 두 작품에 비해 ‘검사외전’의 이야기가 갖는 구성의 밀도는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사진 = 영화 '쇼생크 탈출' 스틸 컷

사진 = 영화 '쇼생크 탈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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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서면서 떠오른 영화들

먼저 재욱(황정민)이 교도소 수감 후 재소자들로부터 폭력에 시달리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전세를 역전시키고 교도관들과 유대를 쌓는 서사는 영화 ‘쇼생크탈출’과 흡사하나 그 과정은 다소 길고 지루하다.

사진 =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스틸 컷

사진 =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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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 '태양은 가득히' 스틸 컷

사진 = 영화 '태양은 가득히'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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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 지원(강동원)이 검사를 사칭하며 신분증을 만드는 장면은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떠올리게 하며, 교도소에서 검사(박성웅)의 사인을 연습하는 장면은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사인 연습 씬을 고스란히 가져다 놓았다.

사진 = 영화 '어퓨 굿 맨' 스틸 컷

사진 = 영화 '어퓨 굿 맨'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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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맥스의 법정 시퀀스는 영화 ‘어퓨 굿 맨’의 재판 신의 전개방식과 샷 구성을 착실히 답습하고 있다.

영화는 매체의 특성상 한 장르에서 표현할 수 있는 소재나 주제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눈에 익은 클리셰를 차용하거나 표현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검사외전’의 경우 레퍼런스라고 보기엔 유사성의 정도가 지나치며, 그 목적의 방향성은 매우 희미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가 어디 있으랴. 다만, ‘검사외전’은 명작의 익숙함과 검증된 두 배우를 내세워 서사의 완성도를 외면한다. 명절 특수를 겨냥한 기획영화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표절과 레퍼런스의 아슬한 경계

안전한 서사, 검증된 배우가 담보되어야 제작투자가 이뤄지는 최근 충무로 상황에 비춰볼 때 기획영화의 시나리오 개발단계에서 온전한 오리지널 스토리 창작에 소요되는 시간은 소모적으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1700만 명의 관객을 기록한 영화 ‘명량’의 김한민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작 ‘최종병기 활’과 영화 ‘아포칼립토’의 유사성에 대한 지적에 “추격 액션 장르의 원형을 차용했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면 특정 씬의 디테일한 부분에서 그 이미지와 스타일의 유사성이 강하게 남는다.

사진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 컷

사진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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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개봉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역시 영화 ‘데이브’를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추창민 감독은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서사를 차용했기 때문에 유사성을 띄는 것이라 해명했다. 이 두 영화는 스토리 모티프를 분석하는 프로그램인 ‘스토리헬퍼’에 입력, 분석한 결과 약 75%의 서사가 비슷한 것으로 발표된 바 있다.

단순한 유사성만으로 표절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충무로가 선호하는 특정 장르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은 감독과 제작자의 의도적 직무유기에 대한 반증처럼 느껴진다. 시나리오 저작권에 대한 소송 역시 표절 또는 모방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승소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배경이 되고 있다.

창작자의 노력과 성과에 대한 존중 필요

지난해 한국 문단을 뒤흔든 표절논쟁에서 주인공인 신경숙 작가는 문제제기 당시엔 작품을 읽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다, 문제가 커지자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답하며 교묘히 책임을 회피한 바 있다. 유사성 논란에 휘말린 다수의 한국 감독들 역시 ‘레퍼런스’를 방패삼아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 영화 개봉기간이 지나면 논쟁 역시 유야무야 사라지기 때문에 일단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풍조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영화가 나빠지는 걸 본 다음에는, 세상이 나빠지는 걸 보게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새로운 서사에 대한 개척과 도전을 외면하고 익숙하고 안전한 고전을 무차별로 차용하는 충무로 자본권력은 부당한 현실에 맞서는 주인공의 정의감까지 베껴내 스크린을 마음껏 휘젓고 있다. 창작자의 순수한 노력과 성과는 시장논리 앞에 한없이 무력하다. 진실을 진실답게 만드는 양심과 노력, 그 시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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