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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시진핑 열전]시진핑의 롤모델 시중쉰,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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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격동 한국외교의 Key-man 아베 & 시진핑] 그들의 정치 DNA 핏속의 롤모델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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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1935년 10월, 중국공산당 홍군이 1만5000km의 대장정 끝에 도착한 곳은 산시성(山西省) 북부 산베이(陝北) 지역이었다. 10만명의 병력으로 시작한 일행은 이제 고작 8000명의 지친 병사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었다. 국민당군의 봉쇄망을 뚫고 산과 강을 건너온 마오쩌둥(毛澤東)과 홍군. 이들을 맞아 중국 공산혁명의 최후의 근거지를 제공했던 이는 22살의 시중쉰(習仲勳)과 휘하 부대원 5000명이었다.
중국 공산당사는 당시 두 사람의 대화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오쩌둥 "일부 동지들은 산베이가 중국공산당 지도부를 구했다는 말을 하더군요."
-시중쉰 "그 말은 저희가 드리고 싶습니다. 마오 주석과 당 중앙이 산베이에 오지 않았다면 산베이 근거지는 국민당군의 포위에 넘어갔을지 모릅니다."
중국 공산당 1인자인 마오쩌둥이 에둘러 감사하다는 말을 건낸 이는 훗날 중국 국가주석에 오르는 시진핑(習近平)의 아버지 시중쉰이었다.


◆13살에 혁명에 뛰어든 실용주의자= 지방에서 활약하던 시중쉰은 1952년 공산당 중앙선전부 부장 겸 정무원 문화교육위원회 부주임에 임명됐다. 그의 나의 39살이었다. 공산당이 선전 업무를 중시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탁은 장관급 이상의 영전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중쉰의 중앙 정치권 진출은 단순한 발탁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마오쩌둥은 변방의 실력자들이 독자세력화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중앙의 요직으로 발탁하는 방식으로 견제에 나섰는데, 시중쉰 역시 그 대상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온 지 1년 뒤 시중쉰은 아들을 낳았다. 새로 태어난 아들이 베이징에서 태어났다고 해 이름에 베이징의 옛이름 베이핑(北平)의 핑자를 넣어 시진핑이라고 지었다.

시중쉰이 젊은 나이에 높은 직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이력 덕분이다. 그는 일제의 침략에 무력하게 당하고 있던 중국의 현실과 무능과 부패에 찌든 정부에 분노해 13살의 나이에 혁명에 뛰어들었다. 15살에는 학생운동에 참여 했다는 이유로 수감되기도 했다. 옥중에서 공산당 당원이 된 그는 훗날 중국 혁명 영웅으로 불렸던 류즈단(劉志丹)을 만난 뒤 공산혁명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불과 21살의 나이에 산시성과 간쑤성(甘肅省) 22현을 통제하던 산간변구(陝甘邊區) 소비에트 정부 주석에 올랐던 시중쉰은 중국공산당 시베이지구(西北)의 3번째 권력자가 됐다. 그의 상급자는 류즈단과 가오강(高崗) 둘뿐이었다. 시중쉰의 시베이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를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사고의 소유자'라고 평했다. 공산당 특유의 극좌 바람이 불 때마다 그는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합리적인 길을 모색한 인물이라는 설명이다.

◆소설책 한 권에 몰락= 1959년 시중쉰은 한 단계 더 승진해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의 비서장 겸 국무원 부총리를 맡았다. 승승장구하던 시중쉰의 삶은 1962년 '류즈단 사건'을 겪으며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류즈단 사건은 한 편의 소설에서 시작됐다. 시중쉰의 옛 상사 류즈단의 제수인 리젠퉁이 류즈단의 삶을 소설로 써서 시중쉰에게 가져왔다. 시중쉰은 함께 싸웠던 혁명동지들이 등장하는 이 책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책이 출간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하지만 이 소설의 등장인물 가운데에는 시중쉰의 또 다른 상사 가오강을 연상시키는 인물도 있었는데 이 부분이 화근이었다. 가오강은 시중쉰과 함께 지방에서 활약하다 중앙으로 발탁됐지만 정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자살을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보기관에서는 시중쉰이 소설을 이용해 가오강의 명예를 회복시키려 했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이후 시중쉰은 마오쩌둥에 의해 공개적으로 비판당한 뒤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고 16년간의 구금, 감호 생활을 살아야 했다.

류즈단 사건의 이면에는 중국 정치지형의 복잡한 갈등이 감춰져 있었다.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정치적으로 위기를 맞았던 마오쩌둥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당내 주도권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반면 감옥, 지방 공장 생활을 겪어야 했던 시중쉰은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난 뒤에야 베이징에 돌아올 수 있었다. 시중쉰의 몰락은 남부러울 것 없었던 시진핑의 어린시절을 참혹하게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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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의 선두주자= 고난의 시간을 보낸 뒤 시중쉰은 중국 개혁개방의 선두주자로 부활했다. 가난한 중국 서민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덕분인지 그의 개혁개방 의지는 확고부동했다.

1978년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으로 정계에 복귀한 시중쉰은 광둥성(廣東省)의 당서기를 맡게 된다. 그는 지역민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경제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시장경제에 회의적인 중앙 정치인들을 설득했다. 시중쉰은 당시 중국 최고실력자 덩사오핑(鄧小平)에게 광둥의 몇몇 지역을 시범적으로 외자를 유치할 수 있는 경제특구를 만들자고 제안해 승락을 얻어냈다. 1980년 8월 전인대에서 선전, 주하이, 산터우, 샤먼 경제특구 설치안으로 통과됐다. 이후 광둥성은 중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광둥성에서 개혁개방의 틀을 다진 시중쉰은 1981년 중앙정치에 복귀한다. 그는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에 선출돼 후야오방(胡耀邦) 중국공산당 총서기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덩샤오핑이 후계자로 점찍었던 후야오방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인물로 경제 분야의 개혁개방뿐 아니라 정치개혁 문제에 있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다른 공산당 지도자들과 달리 중국공산당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했다. 이 같은 그의 정치적 소신은 덩샤오핑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의 시위 열풍에 이어 후야오방이 혁명 1세대 원로들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고 나서자 두 사람의 갈등은 수습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덩샤오핑은 후야오방을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물러나게 했다. 후야오방의 정책을 지지했던 시중쉰은 후야오방이 권력을 잃는 와중에도 끝까지 그를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시중쉰 역시 중앙정치에서 점차 밀려나게 된다.

◆시중쉰의 유산= 시중쉰은 시진핑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 '중국 공산혁명 원로의 아들'이라는 점만으로도 시진핑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 됐다. 태자당이라는 인적 네트워크에 시진핑이 낄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 시중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중쉰은 1988년 공직에서 은퇴한 뒤 광둥성 선전에서 병든 몸을 치료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중앙 정치와 거리를 뒀던 그는 1999년 건국 50주년 기념식에 참석을 허락해달라고 공산당에 요청했다. 그의 건강을 우려한 공산당 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베이징행에 나섰던 그는 12일간의 체류 기간 동안 당시 중국공산당 최고 실력자였던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차기 권력자인 후진타오(胡錦濤), 원자바오(溫家寶)를 만났다. 이 자리에 시중쉰은 아들 시진핑을 참석하도록 했다. 아들이 중국 최고지도부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 밖에 시진핑이 아버지로부터 배운 가르침 가운데는 청렴한 생활태도를 빼놓을 수 없다. 시중쉰은 시진핑이 어렸을 적에 누나가 신던 꽃신을 물려받아 신게 할 정도로 검소한 삶을 강조했다. 이 덕분인지 시진핑은 청렴한 관료의 삶을 살았다. 덕분에 고도성장기의 중국 연안지역에서 다년간 지방관리를 하면서도 비리 문제로 엮이지 않을 수 있었다.

세련된 정치감각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시진핑은 지방 관료시절부터 당 중앙의 정책과 완전히 일치하는 정책기조를 보였다. 성장을 강조하는 시대는 성장에, 조화를 강조하는 시대에는 조화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었다. 이 같은 유연한 정치감각은 온갖 정치적 풍파를 겪은 아버지를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정치감각은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 모두 시진핑을 반대하지 않토록 만들어 그를 중국 최고 지도자로 이끌었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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