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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아야 합니다"

최종수정 2014.09.02 08:12 기사입력 2014.08.22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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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숙 네번째 시집 '에코의 초상'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김행숙 시인의 '에코의 초상'

김행숙 시인의 '에코의 초상'


"우리를 밟으면 사랑에 빠지리/물결처럼/우리는 깊고/부서지기 쉬운/시간은 언제나 한가운데처럼" ('인간의 시간' 전문)

시간은 지구의 자전이 반복돼 일어난 현상만은 아니다. 우리의 모든 감각이 스며 있고, 사소한 감정과 인문적 사유가 동시에 일어나는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행숙 시인은 2000년대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시단의 아이콘이다. 2003년 첫 시집 '사춘기'(문학과지성사, 2003)로 “서정에서 일탈해 다른 서정에 도달한” 시인은 “현대시의 어떤 징후”(문학평론가 이장욱)가 됐다. 그의 시적 행보는 타인을 향해 있다. 낯설고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자신 안에 웅성거리는 ‘나’에서 타인을 향한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흔히 우리 문학작품을 논할 때 주제나 의미를 기준으로 해설, 소개하는 경향이 강한데 나는 감각, 의미, 내용이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진 않다. 감각이 격렬하게 발생하는 순간에 의식도 같이 형성된다. 사유와 감각은 연동되기 때문에 감각적 경험이 나한테는 중요하다." 시인의 말이다.

시인은 최근 세월호 사태의 참혹한 슬픔을 담은 시집 '에코의 초상'(문학과 지성사 출간)을 펴냈다.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에 이어 네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는 '에코', 즉 메아리라는 존재를 통해 늘상 반복되는 불통의 관계들이 지닌 슬픔을 얘기하고 있다. 에코는 실체가 없는 존재다. 없다기 보다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마지막 말을 반복적으로 울려준다. 시인은 그 잔혹한 ‘에코’의 운명을 시적 자아의 초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소통이 필요한 관계들에게 늘상 에코로 인한 슬픔을 본다. 나아가 끝내 닿을 수 없는 관계, 그러면서도 회피할 수 없는 슬픔의 공동체에 참여한 관계들을 발견한다.

"언젠가 나는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누구에게? 혼자 잠을 깬 너에게? 혼자 잠을 잔 나에게?/가끔 나는 나의 감정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같다. 나는 나의 기쁨의 솜털을 모르며./나는 나의 고통의 소용돌이를 모르며. 나는 나의 사랑의 부리로 쪼아대는 검은 바위를 모르며./(……)너는 또 발을 쥐고 웅크리고 있다. 톡, 톡, 손톱깎이가 내는 소리에 중독된 너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손톱과 발톱을 가진다. 너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벗었다. 네가 또 안경을 쓸 때./또 안경을 벗을 때. 너는 변하는 것에 중독됐는가. 변하지 않는 것에 중독됐는가. 너의 죽음은 언제부터 네 주변을 어슬렁거렸는가." ('차이와 동일성' 일부)
이 시집의 말미에는 세월호 침몰 이후에 씌여진 시들로 채워져 있다.

"별이 못이라면 길이를 잴 수 없이 긴 못, 누구의 가슴에도 깊이를 알 수 없이 깊은 못입니다/오늘 밤하늘은 밤바다처럼 빛을 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중략) 빛을 비추며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아야 했습니다/어디서 날이 밝아온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 했습니다"('빛' 일부)

한 몸속에 여러 존재들이 서로의 생각을 메아리처럼 주고 받고, 한 몸이라는 공동체안에 '안과 밖' 경계를 넘나들며 생동한다. 그 궁극은 죽음을 근거로 한다. 세월호처럼 거기서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 그래서 시인도 타인의 불행을 회피하지 못 한다. 또한 자신에 대한 규탄과 자책을 감내한다. 그 자체가 비극이다. 한 공동체의 불행은 "어디서 날이 밝아온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모두의 책임인 셈이다. 그래서 불행은 "서로서로 빛을 비추며 죽은 아이를 찾는" 공동체적 숙명이다. 결국 나의 한 부분이며 우리 모두의 한 부분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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