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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구본창 "시간의 공명을 담다"‥유한한 생명에 대한 경의

최종수정 2014.05.08 13:55 기사입력 2014.04.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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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이파리를 떨군 채 하얀 벽에 쓸쓸하게 붙어 있는, 사진 속 담쟁이 넝쿨 풍경이 이채롭다. 마치 하얀 캔버스에 드로잉한 것 같다. 대개 이런 풍경이라면 너무도 사소해서 눈여겨볼 리 없다. 메마른 담쟁이 덩굴, 저 너머 생명의 소리는 들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카메라 셔터를 통과한 담쟁이 덩쿨은 온기와 바람을 불어주면 곧 잎을 피워내고 다시 벽면을 기어오를 것처럼 강인함을 드러낸다.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구본창.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구본창.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구본창(61, 사진)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각예술가다. 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드물다. 구본창은 '기록'이라는 사진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작품과 작가, 작업에 대한 평가가 타인에게서 이뤄지는 세상에서 그는 자기 사진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내리기 위해 사진이 아닌, 활자라는 매체를 새롭게 빌려 쓰고 있다. 일종의 자기 진술로 읽힌다.

최근 그는 카메라 셔터와 함께 살아온 인생을 '시간을 수집하는 사진가 -공명의 시간을 담다'(컬처그라퍼 출간)라는 회고록에 담았다. 어린 시절 사진에 입문한 배경에서부터 사진이라는 표현매체에 매료돼 직장을 버리고 유학길에 올랐던 사연, 창작 활동 과정을 깨알같이 정리하고 있다. 구본창의 초기 작품들은 감성과 의식을 다루는 등 '표현'이라는 측면을 강조했다면 후기 작품들은 '기록'에 충실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내면에서 표면으로 이동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 때 상업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진은 일종의 언어다. 외국어를 해독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듯 사진이라는 시각언어를 해독하는데도 훈련이 필요하다. 문자를 아는 사람들이 모두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장의 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진가들이 사용하는 영상어법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사진은 예술이기에 다른 학문의 영역과 달리 주관적이고 '대상과 대화하려는 열린 마음'이 우선한다. 마음이 열리면 표면적인 것 이상을 볼 수 있다."
책 표지.

책 표지.


구본창은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대우실업에 입사, 6개월만에 퇴사하고 독일 함부르크 조형미술대학에서 사진 디자인을 전공했다. 현재 경일대 사진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며 로댕 갤러리,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 국내외에서 40회 이상 사진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리움 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구본창은 "어려서부터 외톨이였던 탓에 그림과 사진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구본창은 "사진의 소통방법은 보여주는 것"이라며 "작가가 아무리 개성 있고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해도 그 결과를 보여줄 수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이순에 이른 그는 세상의 무한한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여전히 젊은 날처럼 심리극, 여행, 우주, 천체, 역사같은 분야의 이야기를 즐기고 사연 많은 사람들의 굴곡진 인생을 나누기 위해 애쓴다. 인문학적 사유가 더해지지 않고는 사진속에 사물과 사람, 존재의 심층까지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가의 기본은 카메라로 이미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요즘 휴대폰으로도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는다. 이미지의 기록이라는 행위가 보편화됐다. 구본창은 "사진가는 사진을 통해 존재를 증명한다"라며 "그 기록들은 대상과 교감하는 방식으로 평소 의식하지 못 했던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작품의 변곡점이나 새로운 연작 사이에는 부친 사망 등 잊지 못할 배경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는 인생사가 결코 작품과 무관하지 않으며 어느 경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게 한다.
구본창 작. '태초에' 시리즈. 1995-1996년

구본창 작. '태초에' 시리즈. 1995-1996년


구본창 작. '탈 시리즈-북청사자' 1998-2003년

구본창 작. '탈 시리즈-북청사자' 1998-2003년


구본창 작. '백자 시리즈'(대영박물관 소장) 2006년

구본창 작. '백자 시리즈'(대영박물관 소장) 2006년

구본창은 "나의 사진은 어느 측면에서 자화상이자 상처이며, 그 극복과정으로서의 창작 행위"라며 "시간이 지나면서 사물과 사람의 내면에서 여백을 보고,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고 고백한다.

그의 사진속에는 사라짐으로써 존재를 드러내는 비누, 벼룩시장에서 사 모은 시계, 낡은 의자, 선풍기 등 일상의 사물들이 자신의 기억과 흔적, 시간을 드러내 보인다. 문득 버려져야 마땅할 물건들이 카메라 셔터를 통해 재생되고, 또 되살아나 말을 건다. 그런 구본창식 사진 소통법은 사람의 신체, 심지어는 영화 포스터, 상업 사진 속 제품에까지 여실히 투영된다.

'구본창-시간의 공명을 담다'에는 생명체의 외로움을 담은 '굿바이 파라다이스', 인간 본성의 불안정함을 그린 '태초에', '숨' 연작, 바다와 강물의 반복적 흐름을 통해 관조적이면서도 유동적인 자연의 맥박을 표현한 '리버런', '스노우', 화이트' 연작, '백자', '탈' 시리즈의 창작 전 과정이 실려 있다. 부분적으로 '에스콰이어' 등 상업 사진을 찍게 된 일화며, 상업사진과 예술사진에 대한 견해도 엿볼 수 있다.

"드라마틱하고 규모가 큰 것보다 잘 들리지 않는 떨림이나 사소한 일상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들, 삶의 표면 아래 감춰진 자국들에 마음이 간다. 그것을 찾아냈을 때, 사진에 기록하여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었을 때, 나의 존재 가치도 살아나는 것 같다. 끊임없이 그런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것이 사진가로서 나의 삶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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