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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튀는 건 싫네" "내 얘기를 써주게"…두 '연설천재' 대통령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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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씨 인터뷰

"너무 튀는 건 싫네" "내 얘기를 써주게"…두 '연설천재' 대통령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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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사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임기 3년차에 부르시더니 꼭 책을 쓰라고 하셨다. 우리나라의 글쓰기, 말하기 수준이 낮으니, 내 경험을 사장시키지 말고 노하우를 공유하라는 뜻이었다. 그동안 바빠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작년 11월부터 쓰기 시작해 딱 두 달이 걸렸다. 하지만 그 때의 그 경험들이 아직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기억을 되살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신간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52) 씨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고 다듬었다. 대우그룹과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기업인들의 연설문을 담당하다가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연설비서관으로 그의 글을 대신했다. 이 8년의 시간을 두고 강원국 씨는 "총칼로 집권한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마음을 얻어 집권한 대통령들 밑에서 말과 글을 배울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라고 회상한다.
대통령 연설문을 쓰는 동안 그는 '좋은 글쓰기, 좋은 연설이란 어떤 것일까'를 수도 없이 고민했다. 특히나 연설문에 있어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두 전 대통령의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자신 없고 힘 빠지는 말투는 싫네. 쉽고 친근하게 쓰게.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등 노 대통령의 주문 사항만 하더라도 길고도 까다로웠다.

"김대중 대통령은 글을 일상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을 선호했고, 너무 튀는 것도 싫어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첫 한 줄이 인상에 남도록 잘 쓰기를 원했다. 첫 문장이 안 풀리면 몇 날 며칠을 끙끙대야 했다. 그래도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의 시간을 절약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되는 일이다. 다른 어떤 누구보다 대통령의 가장 큰 조력자인 셈이다. 대통령은 그야말로 '말하는' 자리인데, 그 말을 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하는 셈이다."

8년의 청와대 시절 동안 받은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늘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달고 살았다. 6년차에 접어들었을 때는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에 사표까지 낸 적도 있다. 그래도 그렇게 깐깐하던 대통령의 입에서 이따금 '잘썼다'는 칭찬이 나오면 하늘을 날아갈 듯 기뻤다고 한다. "기업 회장들의 연설을 쓸 때는 오히려 쉬웠다. 회장들은 직원들 눈치를 안보니까. 하지만 대통령은 표를 먹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지도가 떨어지면 국정 운영을 못한다. 말 한 마디가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옆에서 지켜본 두 대통령은 스타일면에서나 성격 면에서나 차이점이 컸고, 이는 글쓰기에서도 드러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최대한 쉬운 표현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햇볕정책을 설명하는 데는 이솝우화가 동원됐고, 반복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반복을 싫어해 매번 다른 표현을 썼다. 깔끔하게 정제된 표현보다는 진솔하고 투박한 표현을 좋아했다. 김 대통령이 격식을 갖춘 채 연설을 시작하는 것을 선호했다면 노 대통령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시작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핵심을 꿰뚫는 표현이나,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은 일치했다. 조어와 카피에도 능했다. 김 대통령은 '행동하는 양심', '철의 실크로드', '북방경제', '한반도 시대',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전진한다' 등의 말을 남겼고, 노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 깨어있는 시민',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중에서도 강원국 씨가 꼽은 최고의 연설은 2006년 노 대통령이 한일 관계에 대한 2006년 특별 담화문에서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라고 말한 장면이다.

"언론에서는 노 대통령의 말에 대해 공격을 많이 했다. 본인 스스로도 '내가 고급스럽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인정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노 대통령은 누구보다 품위있게 말하면서도 핵심 키워드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연설의 '천재'였다. 이 책을 쓰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인연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행복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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