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에서의 포켓을 말하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누구로부터인지 모르게 치마 밑 저 안쪽 속바지에 붙인 할머니의 포켓을 떠올릴 것이다. 네모 비슷하게 오려서 바지 겉에 꿰매 붙인 어설픈 포켓 말이다. 그리고 그 안에 꼬깃꼬깃 몇 푼 안되는 돈이 들어있었다. 아녀자들이 비밀 자금을 숨기기도 했고, 어느 곳에서나 꺼내 쓸 수 있는 움직이는 은행이기도 했다. 치근대는 손자에게 눈깔사탕 하나 사주려고 누가 볼세라 치마를 들치고 돈을 꺼내던 할머니의 그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안다. 뭉클해지는 추억이다. 좀 더 발달된 포켓도 있었다. 두루마기 옆 솔기를 다 꿰매지 않고 손이 들어갈 만큼 남겨 안감과 이어서 안쪽에 포켓을 만들었다. 이것 역시 어디서, 누구로 부터인지 그 시작은 알 수 없지만 추우면 손을 넣기도 하고 손수건 같은 간단한 물건을 넣기도 하였다. 모두 눈에 띄지 않는, 숨겨진 포켓이었다.
과거, 오랫동안 옷감은 화폐와 같은 가치를 가진 귀한 물건이었다. 따라서 아무나 새 옷감으로 복잡하게 재단해, 만들어 입기 어려웠다. 우리의 복식미를 곡선의 미라고들 한다. 배래와 깃과 섶이 곡선이며 넓게 퍼지는 치마의 사선 때문일 것이다. 저고리, 치마, 바지, 두루마기 등 한감이면 크기에 차이가 있을 뿐 긴 직사각형의 천이다. 예를 들어 저고리 한감이면 몸판, 양 소매, 깃, 섶, 고름까지 크고 작은 직사각형들이다. 소매라고, 깃이라고, 섶이라고 하여 곡선으로 잘라내는 법이 없었다. 꿰맸던 곳을 뜯으면 그대로 네모반듯한 조각이다. 지금이야 곡선을 곱게 하려고 깨끗이 잘라내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안으로 접어 넣어 바느질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세탁을 할 때 반드시 솔기를 뜯어 빨아서 다시 꿰매어 입었다. 옷을 뜯지 않고 통으로 빤 것도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어디에 대고 꿰맬 천도 남지 않았다. 만일 천 조각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그 작은 조각들을 모아 보자기라도 만들어야했다. 그것이 규방의 예술 작품인 조각보다.
옷감이 귀해서였다. 더구나 새 천에 구멍을 내는 것은 더욱 할 수 없었으므로, 포켓은 물론 단추 구멍을 낼 수도 없었다. 긴 고름으로 묶거나 고리에 걸어 여몄다. 어려운 생활에 시달리다 보니, '값진' 옷감에 가위질을 하기 어려웠던 마음가짐이 오랫동안 포켓이 없는 의생활을 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송명견 동덕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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