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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오빠 삼촌…'도가니'에 갇힌 딸들

최종수정 2012.09.15 08:00 기사입력 2012.09.15 08:00

친족성폭력, 수치심 탓에 주변에 알리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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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 이지연(가명·30대女)씨는 중학생 시절 친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오빠에게 구타당한 흔적 때문에 한여름에도 반팔 티셔츠를 입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칼을 옆에 두고 협박하는 오빠에 대한 두려움으로 반항은 물론 주변에 알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악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상황을 알게 된 오빠 친구들까지 이씨를 차례로 짓밟았다.
이 사례는 한국 성폭력 상담소에 접수된 실제 상담내용 중 하나다. 가족간의 성폭력이 얼마나 쉽게 은폐되고 또다른 피해로 확대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 친족성폭력이 가족 내 권력을 쥐고 있는 아버지에 의한 경우가 가장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피해 사실을 알리기는 더욱 어렵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는 문숙영씨(37)는 "대부분 성폭력을 떠올리면 나영이 사건처럼 극적인 외상을 남기는 잔인한 경우만 떠올린다"며 "하지만 별다른 증상 없이 일상적으로 수차례, 수년간 반복되는 친족성폭력은 발견도, 처벌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씨는 "가해자의 성교육을 빙자한 추행은 결국 강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접근하는 만큼 눈에 띄는 외상이 없고 힘의 불균형상 주위에 알리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법적인 절차를 밟는다 하더라도 증거 우선주의 원칙상 가해자의 범죄 여부를 밝혀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1년 상담 통계 현황에 따르면 전체 상담건수 1151건 중 친·인척에게 당한 사례는 총 187건으로 16.3%를 차지했다. 이중 어린이와 유아의 경우 친족, 친인척에 의학 성폭력 피해가 각각 53.5%, 43.9%로 가장 많았다. 이는 어린 피해자의 생활공간 및 일상에서 친족성폭력이 빈번이 벌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대부분의 친족성폭력은 유아, 아동기 때 시작돼 생리 시작으로 임신이 가능한 청소년기 및 성인기까지 지속된다. 피해자들이 이를 폭력으로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또 안다 하더라도 침묵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가해자 외에 다른 가족 구성원이 피해 사실을 알고도 방치할 경우엔 그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 2011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통계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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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족성폭력 피해 경험을 담은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를 펴낸 은수연씨는 "엄마는 아예 심리적, 물리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됐다"면서 "나중에 상담을 받고 난 후에야 나를 보호해주지 않은 어머니를 많이 원망했다"고 말했다.

은씨 역시 수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주변에 피해사실을 알렸다. 그는 "피해를 당한 것에 수치심을 느끼면 주변에 말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뛰쳐나와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신과 전문의 유은정 박사의 의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유씨는 "성폭력 피해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이 더욱 심할 수 있고, 자기비난감 및 비하감이 특히 심하다"면서 "사건 당시에는 주위에 알리지 못하다가 우울증이 발병해 치료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피해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재해, 사고 등으로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이후에도 계속적인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이다. 흔히 불면증, 우울증, 자기비하, 의욕상실, 자살충동 등을 동반한다.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일단 피해자에 대한 낙인효과 즉, '섹스'라는 자극적인 언어로 이해하는 사회적 편견 탓에 폭로나 법적절차 단계에서의 심리적 후유증과 수치심을 대부분 감당하기 어려워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친족성폭력은 정신이상자 등 특수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범죄가 아니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사건"이라며 "피해자가 용기를 가지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심리적, 사회적 환경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장인서 기자 en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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