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C";$title="주재헌 태광산업 대표";$txt="주재헌 태광산업 대표";$size="550,412,0";$no="2010062315094134804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지난 12일 대한민국 축구팀의 첫 경기 그리스 전이 열리던 날. 하루 종일 내린 비로 거리 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비옷까지 챙겨 입고 응원하느라 곤욕을 치뤘다. 하지만 이 날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은 사람도 있다. 24일 서울 상봉동 사무실에서 만난 주재헌 태광산업 대표(사진)다.
그는 대뜸 "그리스전 때 거리응원 했느냐"고 물었다. 기자가 "집에서 봤다"고 하자 "거리에서 봤으면 우리 우의를 입었을 텐데"라며 입맛을 쩍쩍 다셨다.
태광산업은 국내 우의시장 점유율 60%를 자랑하는 업계 선두기업이다. 한 달에 생산하는 일회용 우의만 36만장에 달한다. 다른 종류의 우의까지 합하면 매달 45만장 가량 판매된다고 한다.
"그리스전 때 많이 팔렸냐"고 묻자 금세 주 대표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진다. 공장 비축분 5만장이 그날 하루에 다 팔렸단다. "붉은 악마에서 단체 주문도 있었고 거리 판매도 많이 됐습니다. 거래처마다 물건 달라고 아우성인데 물건이 있어야 주죠. 미안하면서도 기분은 좋더군요." 국내뿐 아니라 중국공장까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물건이 달린다고 한다.
주 대표는 원래 이모부가 운영하던 회사를 1995년 인수했다. 잘 되던 회사를 인수했으니 별 어려움 없었겠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인수 당시 시장 점유율이 5% 미만이었습니다. 까딱 잘못 하다간 조용히 사라질 그런 규모였죠." 인수한 지 2년도 안돼 위기를 맞았다. IMF 외환위기였다. 이 때 주 대표는 회사 부도를 막기 위해 사재를 털어 어음을 막았다. 자신은 빈털털이가 됐지만 회사는 살릴 수 있었다.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업계에서 신용을 얻을 수 있었다"며 "2년 뒤 또 부도 위기를 맞았지만 신용도 있고 한 번 부도를 이겨낸 경험도 있고 해서 큰 타격 없이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주 대표는 회사를 키우기 위해선 무엇보다 제품개발이 중요하다고 봤다. 이런저런 다양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덕분에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적재산권만 70여개다. 지난해 11월에는 연구개발에 힘쓴 점을 인정받아 지식경제부장관상까지 받았다. 매일 3~4시간씩 자면서 쏟은 노력이 결실을 맺은 셈이다.
그의 성공에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어머니였다.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 홀로 서울로 상경해 궂은 일을 다 하며 제 뒷바라지를 해주셨죠. 그 모습을 보며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자 주 대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내 어린 시절은 지금의 나를 만든 자양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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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향후 포부에 대해 물었다. 주 대표는 "세계 최대 우의 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그렇게 되려면 어찌 해야겠냐"고 물었더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우선 우리나라 16강 때 비가 좀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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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종 기자 han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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