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토대로 매순간 새로운 기억을 저장한다. 특히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필요한 기억과 정보를 선택'하는 것은 인간이 의사결정을 하고, 문제해결과 논리적 추론 등 고차원 인지 기능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국내 연구팀이 뇌가 기억을 구분·전환하는 일종의 '신경 스위치'를 세계 최초로 규명해 기억력 감퇴 등 치료에 실마리를 찾았다.


(왼쪽부터) 한진희 교수, 김무준 박사. KAIST

(왼쪽부터) 한진희 교수, 김무준 박사.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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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는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 연구팀이 '내측 중격(Medial Septum·MS, 기억과 학습을 조절하는 뇌 영역)과 '내측내후각피질(Medial Entorhinal Cortex·MEC, 해마와 연결돼 기억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을 잇는 특정 신경 회로가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전환해 상황별 정보를 선택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18일 밝혔다.

뇌 깊숙한 곳에 위치한 내측중격은 해마의 활동 리듬을 조절하면서 뇌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저장해 불러올 수 있게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내측중격의 특정 신경세포가 기억 정보를 처리해 해마로 전달하는 외 영역인 내측내후각피질로 신호를 보낼 때 뇌가 최근 기억을 활성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반대로 빛을 이용해 이 신경 회로를 인위적으로 차단했을 때는 최근 기억을 활용하지 못하고, 과거 방식대로 행동하는 것을 실험동물을 통해 입증했다.

기억 저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의 신경 활동 역시 과거 상태로 되돌아갔다. 이는 해당 회로가 여러 기억 중 현재 상황에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는 '신경 스위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의 기억 사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는 능력은 인간의 의사결정, 문제 해결, 미래 예측, 논리적 추론 등 고차원 인지 기능의 핵심이다. 연구팀은 장기간 풀리지 않던 '뇌가 어떤 원리로 기억을 구분하고 전환하는지'를 이번 연구를 통해 증명한 셈이다.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MS-MEC 억제성 신경회로 스위치(AI 생성 이미지). KAIST

과거와 현재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조절하는 MS-MEC 억제성 신경회로 스위치(AI 생성 이미지). KA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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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뇌의 활성 상태에 따른 기억 수행 능력도 분석했다. 인간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온라인 상태(세타파·학습과 집중 시 활성화되는 뇌파)'와 휴식 상태인 '오프라인 상태(델타파·수면이나 휴식 시 나타나는 느린 뇌파)'를 반복적으로 오간다.


분석 결과 온라인 상태가 길게 유지될수록 기억은 선명해지고, 온라인·오프라인 상태 전환이 잦을수록 기억 인출 능력이 눈에 띄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뇌의 특정 리듬과 상태가 효과적인 기억 인출을 결정하는 중요한 신경학적 지표임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뇌가 과거 기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유연하게 반영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향후 치매·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 질환 환자의 기억력 감퇴와 인지 유연성 저하를 개선할 새로운 치료 기술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한 교수는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인간의 뇌가 수많은 경험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활용하는 원리를 찾아냈다"며 "기억 인출이 단지 '저장된 흔적을 재생하는 과정'으로 이해됐던 기존과 다르게 이번 연구는 뇌가 경쟁하는 기억 중 필요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선택하는 일종의 '조절 시스템'을 가졌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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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연구에는 KAIST 생명과학과 김무준 박사·서보인 박사과정·소선회 박사과정·최정욱 박사과정·황재민 박사과정·박주희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참여했다. 연구 결과는 최근 신경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게재됐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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