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길 산책]2026년 아비뇽, 세계에 선보일 K-연극
신록이 푸르러지는 이즈음 이곳저곳에서 연극축제 소식이 들려온다. 서울연극협회 주최로 올해로 47회를 맞는 '서울연극제'가 지난 3일 개막해 오는 6월28일까지 장장 61일간 공연을 펼쳐 보일 예정이다. 또 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가 지역별 경선을 마치고 전국대회 개막을 준비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연극축제는 기원전 534년 고대 그리스 디오니소스 축제 기간 중의 비극경연대회다. 민주정치가 꽃피던 시기,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숭배하던 디오니소스 신의 생명력을 기리며 본격적인 연극축제를 시작했다. 볼거리가 많지 않던 그 시절, 그리스 전역에서 모여든 인파가 2만0000석 남짓의 객석을 채웠고 심지어 노예와 죄수들에게도 관극의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 신에 대한 경배의식을 마치고 사흘 내내 경연대회를 치러 소포클레스 등 최고의 극작가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1947년 프랑스의 연극인 장 빌라르가 창시한 아비뇽연극제는 교황청이 소재한 유서 깊은 도시, 아비뇽의 일상 공간 곳곳이 무대가 되는 획기적인 축제다. 2023년 이래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티아고 호드리게스가 2024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초대로 내한한 바 있다.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출연까지 하는 독특한 공연 '바이 하트(By Heart)'를 선보였는데, 공연 현장에서는 참여 의사를 밝힌 10인의 관객이 무대에 올라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편을 한 줄 한 줄 외워나가는 과정이 펼쳐졌다. 변하는 시대에 다양한 유형의 관객들과 연극 경험을 나누기 위해 늘 고민한다는 그는 함께 시를 외우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 안에서 정서와 사랑을 나누는 행위인 연극의 본질을 반영한다고 강변한다.
매년 하나의 언어를 초청해 축제를 프로그래밍하고 있는 그는 2026년 아비뇽 축제에서 '한국어'를 초청 언어로 정하고 우리의 공연예술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에 초청된 작품들의 라인업을 보면 우리 연극계의 다양한 작품 중 호드리게스 예술감독의 개인적 성향이 반영된 선택으로 여겨진다. 연극이란 드라마의 서사와 배우의 연기, 그리고 공연 장소의 공간성이 어우러져 관객들과 현장에서 호흡을 나누는 예술이다. 2026년 입센 상을 받은 구자하의 '쿠쿠' '한국연극의 역사'와 '하리보 김치', 이자람의 '눈, 눈, 눈', 이경성의 '섬 이야기'와 이진엽의 '머티리얼' 등 이번 초청작들은 대체로 1인 시어터 메이커의 색다른 아이디어로 연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성을 보인다. 한편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소설 '헤어지지 않는다'의 독회 공연이 주 공연장인 쿠르 도뇌르(Cour d'Honneur)에서 이자벨 위페르와 이혜영의 연기로 소개될 예정이다.
연극은 2500년 전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공식적으로 선보이기 시작한 이래 시대와 함께 변화를 거듭해 왔다. 2026년 프랑스의 아비뇽 축제에 소개될 우리 연극은 오늘날 우리나라 연극의 폭넓은 스펙트럼의 극히 일부 모습이다. 소품 위주의 공연들이다 보니 우리 공연예술의 멋과 흥, 그리고 창의성을 보다 큰 규모로 소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일말의 아쉬움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의 관습과 경계에 도전해 온 아비뇽의 정신과 소통하는 시도들로서 세계인에게 당당히 우리 K컬처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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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원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회장·경계없는예술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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