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藥국가]①유통책이 물었다…유흥가, 얼마나 알고 있나
■ 1장. 이미, 마약이 덮친 나라
교도소 수감 중인 마약 유통책 접견 인터뷰
"유통 실태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심각"
"구조적으로 위험, 유흥 가까이 하지 말라"
"기자님이 알고 있는 유흥가의 모습이 몇 퍼센트나 될 것 같아요? 절반도 모를 겁니다."
건장한 체격이 드러나는 파란색 수의와 하늘색 명찰. 접견실로 나온 유통책은 길게 자란 머리칼을 넘기며 입을 뗐다. 하늘색 명찰은 마약류 사범을 뜻한다. 그는 강남 유흥가에 케타민을 공급해온 유통책 상선(윗선)이었다. 아시아경제는 마약 유통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20대 K씨를 만났다. 두 차례의 접견과 서면을 통해 확인한 현실을 고발한다.
"드러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유흥가 실태 고발
K씨는 겉으로 드러난 한국의 마약 실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술·담배를 구하듯이 마약을 구하기가 쉬워졌다고 했다. 그는 "룸살롱이나 가라오케에 가면 술값과 TC(여성 접객원 비용)에 약값을 같이 치른다"고 설명했다. 종업원에게 '약을 원한다'는 신호를 주면 판매자를 연결해주고 술값과 묶어 계산한다는 이야기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K씨는 '쩜오' '퍼블릭' 등으로 불리는 유흥업소에 케타민을 공급해왔다. 업소에는 한탕으로 돈을 번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불법으로 큰돈을 만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빠지는 게 성적 유흥이고, 그 다음 단계가 마약"이라며 "유흥에 빠진 사람들이 닿는 밑바닥"이라고 꼬집었다.
K씨는 10대 시절 미국·남미 지역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대마초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마약을 접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엑스터시, 케타민 등을 본격적으로 투약했다. 유흥으로 마약을 찾던 그는 20대 초반 유통망에 발을 들였다. 해외 총책으로부터 물건을 들여오는 '형님(국내 총책을 일컫는 말)'에게서 도매 단위로 약을 떼 유통했다. 수요가 많은 강남 유흥가로 흘러갔다.
손에서 손으로…텔레그램보다 은밀한 유통 방식
K씨가 마약을 유통하는 방식은 '손 대 손' 혹은 '손손'이라 불린다.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물건과 대금을 직접 주고받는 것이다. 그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상대방과 손 대 손으로만 거래한다"며 "한 손으로 약을 건네고 다른 손으로는 현금을 받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런 유통 구조에서 상선에 해당하는 K씨는 그 존재가 철저히 은폐된다. 약을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파트너를 통해 몇 차례 '손'을 거쳐 판매한다. 신뢰를 담보로 물건을 받은 중간책은 유통 과정에서 커미션(수수료)을 붙여 수익을 챙기는 구조다. 구매자의 실수나 사고로 꼬리가 밟히더라도 중간책은 '텔레그램에서 구한 물건이라 판매자를 모른다'며 추적을 차단한다.
최근에는 텔레그램과 가상자산을 통한 비대면 거래가 수사기관을 곤혹스럽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K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텔레그램으로 유통해도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다 잡을 수 있겠지만, 굳이 잡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잡아봐야 말단에 불과할 테고 초범이면 기소유예밖에 안 나올 텐데 그 정도로 품을 들일 이유가 없지 않겠느냐"라고 주장했다.
텔레그램을 통한 유통은 '손'보다 몇 단계를 더 거치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광범위하게 전파된다. K씨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해외 총책으로부터 국제우편(EMS)·지게꾼(수입 운반책) 등을 통해 마약을 밀수한 국내 총책이 '창고'라 불리는 물량 담당에게 약을 전달한다. 이후 좌표 딜러(텔레그램 판매책)가 드라퍼(운반책)를 통해 '던지기' 수법으로 약을 판매하는 순이다.
수사망 어떻게 피했나…경검, 이런 수법 막아야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던 K씨는 어쩌다 덜미를 잡혔을까. 그는 수사망을 따돌리기 위한 몇 가지 전략을 소개했다. 기본적으로 파트너와 신뢰가 생겨도 서로 가명을 쓰는 게 원칙이다. 연락은 대포폰이나 선불 유심만 사용한다. 차량도 하·허·호 등 전용 번호판이 달리는 영업용 렌터카 대신 개인 렌트만 이용한다고 했다. 거처는 '깔세'를 이용하되 3개월 단위로 옮겨 다닌다.
깔세는 보증금 없이 일정 기간 월세를 선불로 내고 거주하는 단기 임대 방식을 말한다. 임차인이 빌린 부동산을 다시 제3자에게 빌려주는 전대차 계약으로, 사실상 불법이다. K씨는 "1~2년짜리 전세로 강남 오피스텔 등을 계약한 뒤 월세를 덧씌워 내주는 곳이 있다"며 "이미 계약된 집에 웃돈을 주고 3개월씩 들어가서 지내는 건데, 이렇게 하면 흔적이 안 남는다"고 했다.
이런 수법들을 동원해도 수사기관은 이미 뒤를 쫓고 있었다. K씨는 "파트너가 경찰에 잡혀서 윗선을 불면 내사 대상에 오르는데 경찰이 3~6개월 동안 쫓아다니면서 지켜본다"며 "기지국 통신 내역까지 다 따본 상태였고 큰 물량을 거래한 날짜도 다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수사기관과 손을 잡는 '야당'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형량을 줄이거나 수사망에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는 "우리 세대보단 40~60대 중에 야당이 많다"며 "형량 감경이나 불구속 수사를 조건으로 검사와 직접 거래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전했다.
교도소 안에서도…"유흥의 끝은 마약, 절대 하지 말라"
K씨는 투약·유통 혐의로 징역 3년을 받아 복역 중이다. 교정시설에서도 마약의 굴레는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심각할 정도로 중독된 사람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먼저 '간접 투약'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진다고 폭로했다. 그는 "수감 중에도 투약할 방법은 다양하다"며 "약을 달라고 난리 치면 특정 감기약을 처방해주는데 환각 효과를 노리고 수십 정을 모아 한 번에 먹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신경통 치료제, 수면제 등 마약류 성분이 포함된 특정 처방약을 들여와 잘못된 목적으로 오남용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K씨는 마약과의 단절을 다짐하고 있다. 그는 "방에서 감기약을 모아 먹고 취해 있는 모습을 보고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며 "출소하면 반드시 손을 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간 뒤에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며 "지금도 약을 하는 지인들에게 연락이 자주 온다"고 덧붙였다. 마약을 접하는 건 쉽지만, 빠져나오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마약에 호기심을 갖는 이들에겐 "정말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유흥가에 절대 가까이 가지 말라"라며 "성매매로 성적 유흥을 즐기기 시작한 사람들이 결국 마약까지 손을 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거듭 당부했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봤어요. 쾌락을 좇는 사람들은 결국 마약에 손을 댔습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유흥가에 있으면 그렇게 빠지도록 만드는 구조입니다. 절대 가까이 가지 마세요."
부산=특별취재팀|장희준 오지은 박호수 이지예 박재현 기자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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