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로그, 전국 대학생들 '실시간 일기' 안착
숏폼 형식에 폐쇄성 더해 Z세대 취향저격
전문가 "빨리 식는 트렌드는 한계" 분석도

만나지 않아도 함께 있는 듯한 느낌, 허세 대신 있는 '대충' 있는 그대로! 경희대 성악과에 재학 중인 송시은씨(23)는 공강 시간만 되면 습관처럼 셋로그(SETLOG) 앱을 켠다. 송씨는 "요즘 대학가에선 셋로그를 하지 않으면 뭔가 친한 친구가 없는 느낌"이라며 "특별한 일상이 아닌데도 친구들과 2초 영상을 차곡차곡 쌓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출시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셋로그가 전국 대학가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1시간마다 울리는 알람에 맞춰 이용자가 2초짜리 영상을 찍어 공유하는 방식의 이 앱은 최근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 인기 순위 상위권에 오르며 2030세대 사이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전국 대학생 15명으로부터 상세한 평가를 듣고 '짧은 기록'에 매료된 배경을 짚어봤다.

대충 찍어도 OK…"관계유지 비용 낮춘 新문화"

셋로그 이용자들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손동작 영상을 촬영해 공유하고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같은 포즈를 맞춰 찍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셋로그 인스타그램

셋로그 이용자들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손동작 영상을 촬영해 공유하고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같은 포즈를 맞춰 찍는 문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셋로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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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로그 열풍의 핵심은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기존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잘 나온 사진과 편집된 영상을 중심으로 흘러가며 피로감을 키웠다면 가공되지 않은 순간을 강점으로 내세운 것이다. 저장된 사진은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실시간으로 촬영해야 한다. 편집 기능도 제한적이다. "강의실에서 졸린 얼굴 그대로 올려도 부담이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상명대 휴먼AI공학과 재학생 조현우씨(26)는 "수정이나 편집이 안 되니 쉬는 시간이나 이동 중에 진짜 현실적인 모습을 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김현우씨(25)도 "진짜 일상을 보는 재미가 있다"며 "따로 연락하지 않아도 같이 다니는 느낌"이라고 했다.


전문가는 셋로그 유행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굳어진 영상 중심의 소통 문화와 맞닿아 있다고 분석한다.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는 비대면 환경에서 영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데 익숙하다"며 "화려한 자기 연출보다 '지금 무엇을 하는지' 공유하는 방식으로 관계 유지 비용을 낮췄다"고 평가했다.

강의실 찰칵, 학식도 찰칵…대학가 점령한 '2초 소통' 원본보기 아이콘

자극이 적은 SNS라는 점에서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인스타그램이 여행·패션·자기계발 등을 과시하는 공간으로 소비됐다면 셋로그는 별다른 목적 없이 일상을 흘려보내는 데 가깝다. 하루 동안 찍힌 2초 영상들이 자동으로 이어져 하나의 브이로그처럼 저장되는 기능도 이용자들의 기록 욕구를 자극한다. 일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다 보면 하나의 일기가 완성되는 셈이다.


서울대 국악과 심모씨(20)는 "답장 압박이 없다는 게 편하다"며 "다들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가볍게 볼 수 있어서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박수경씨(24) 역시 "멀리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교환학생을 떠난 친구와도 같이 생활을 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셋로그는 기록 앱을 넘어 새로운 양상의 인간관계 플랫폼으로도 발전하고 있다.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선 남녀가 6명씩 익명 방을 만들어 수일간 서로의 일상을 공유한 뒤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셋로그 과팅' 문화도 확산 중이다. 에브리타임·인스타그램·엑스(X·옛 트위터) 등에는 '셋로그 찍을 사람 모집' '26학번 셋로그 방 구함' 같은 글이 잇따르고 있다. 전북대 심리학과 이모씨(22)는 "소개팅은 사진 몇 장만 보고 나가야 했는데 셋로그는 생활 패턴이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며 "일상을 보다 만나면 어색함도 덜하다"고 전했다.


너무 빨리 식는 유행…"또다른 피로 낳을 수도"

다만 이런 열풍이 장기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대학가 유행은 짧은 주기로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바이 쫀득 쿠키'나 '상하이 버터떡'처럼 SNS를 중심으로 번진 유행들도 반짝 확산한 뒤 빠르게 식어버렸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도파민 자극형 콘텐츠를 매우 빠르게 소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유행 주기 자체가 짧아지고 있다"며 "셋로그 역시 지금의 신선함이 사라질 경우 이용자 이탈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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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또 다른 형태의 피로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이영애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처음에는 가볍고 자유로운 소통으로 시작되더라도 결국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계속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실시간 공유 문화가 새로운 인증 강박이 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호수 기자 lake@asiae.co.kr
오지은 기자 j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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