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기업] 삼성이 해서 달랐을까.. 초격차 노리는 '삼바'의 모든 것
제약·바이오 분야는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대표적 업종이다. 삼성이 이 사업에 진출한다고 선언했을 때 두 시선이 교차했다. 삼성이 하면 다를 것 그리고 삼성도 뾰족한 방법이 없을 것. 한국 제약산업은 업력이 100년을 훌쩍 넘었지만 '선진국 수준'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 신약 개발 분야에서 그렇다. 막대한 투자 그리고 희박한 가능성,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위한 기간 단축의 어려움 등이 제약·바이오 분야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어쨌든 삼성은 뛰어들었고 10년이 지났다. 반도체에 이어 바이오에서도 삼성은 초일류, 초격차를 실현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주인공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어디까지 와있는 것일까.
출범 6년 만에 글로벌 1위 도약.. 그러나 분야는 '위탁생산'
삼바는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2010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승지원에서 열린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이 전 회장은 "삼성의 주력상품인 스마트폰, LCD 등의 상품도 10년 이내에 따라잡힐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에서 차세대 주력 사업 5개 부분 중 하나로 제약산업을 선정, 그룹의 미래를 걸고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4월 삼바 법인이 설립됐고, 단 한 달 만에 생산 규모 3만 리터(ℓ)의 인천 송도 제1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삼바는 설립 후 단 2년여 만인 2013년 10월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 대기업 '로슈'와의 생산 파트너십을 체결해 성장 모멘텀도 마련했다. 2015년에는 생산 규모 15만4000ℓ의 2공장을 완공했고, 2017년 11월에는 3공장(18만ℓ)이 가동됐다. 출범 이후 단 6년 만에 생산 규모 36만4000ℓ를 갖춘 글로벌 1위의 바이오 위탁생산 기업으로 도약한 것이다.
과감한 자본 투자로 CDMO 선도 기업 따돌려
삼바의 주력 사업은 위탁개발생산조직(Contract development and manufacturing organization·CDMO)이라 불리는 모델이다. 차세대 의약 개발에 필요한 원료 의약품, 시험용 시료, 상업용 의약품 등을 대신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의약품의 핵심이 되는 세포주를 의뢰 업체로 받아 완제품으로 만들기만 하는 사업은 '위탁생산(CMO)', 삼바처럼 세포주까지 직접 배양해 완제품까지 만드는 사업을 CDMO라고 한다.
CDMO는 삼성이 출사표를 내기 전부터 블루오션으로 점지된 시장이었다. 제약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신약 개발뿐만 아니라 약품 생산 공정도 까다로워졌다. 글로벌 제약 대기업들은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느라 약물 공장에 투자할 여력이 줄었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게 CDMO 업체들이었다.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설리번'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 CDMO 시장은 오는 2026년까지 연평균 31% 이상 성장해 101억1350만달러(약 14조5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CDMO 시장의 잠재력을 알아본 스위스 론자, 독일 베링거인겔하임, 일본 후지필름 등은 일찍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삼바는 2011년 CDMO 사업을 시작했으므로 이들 기업에 비해 후발주자다. 이미 대형 제작사와의 탄탄한 파트너십을 맺은 선도 기업들보다 불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취약점을 삼바는 공격적인 자본 투자로 극복하고자 했다. 과거 연간 30만ℓ의 생산 능력을 갖춘 글로벌 CDMO 기업은 스위스 론자와 베링거인겔하임뿐이었다. 삼바는 단 6년 만에 36만ℓ가 넘는 생산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이들과 직접 경쟁이 가능한 체급까지 도달했다.
삼바의 생산력은 글로벌 제약사들에게 신뢰를 줬다. 지난해에는 인류 역사상 두 번째 코로나19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개발에 성공한 미국 '모더나' 사와 생산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 외에도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 기업 바이오젠, 면역 항암제 개발사 'KAHR 메디칼' 등이 삼바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다.
생산능력 증진과 맞물려 실적도 빠르게 개선됐다. 2017년 삼바는 매출액 4646억원, 영업이익 660억원에 불과했으나, 단 4년 만인 지난해에는 매출 1조5680억원과 영업이익 5373억원을 달성했다.
4공장 가동으로 글로벌 생산능력 30% 확보
이런 가운데 지난 1일부터 삼바의 송도 4공장이 부분 가동을 시작했다. 생산능력 24만ℓ에 달하는 4공장은 단일 기준 세계 최대의 의약 공장이며, 앞선 1·2·3 공장과 합치면 전체 생산능력 60만4000ℓ에 달한다. 글로벌 바이오 위탁생산 능력의 30%에 달하는 수치로, 삼바는 선도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1위의 생산능력을 차지하게 될 전망이다.
세계 최대의 생산능력은 삼바의 사업 영역을 위탁생산뿐만 아니라, 의약 개발까지 확장해 주는 발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삼바는 지난 2012년 바이오젠과 공동 설립한 의약품 연구개발 기업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분을 올해 1월 모두 인수하고 4월에는 자회사로 편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시밀러(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을 본떠 만든 복제약)' 연구개발에 특화된 회사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의약품과 유사한 품질, 효과를 가지지만 R&D 비용 및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어 의약품 시장의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삼바의 주요 고객인 대형 제약사는 주로 신약 개발에 집중하므로, 에피스의 복제약 사업이 기존 고객과 갈등을 빚을 우려도 없다.
삼바는 막대한 생산능력으로 글로벌 제약사들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한편, 바이오에피스의 복제약 제품을 추가로 생산함으로써 일반 의약품 위탁생산 시장과 복제약 개발 및 제조 사업을 동시에 석권하는 '투 트랙 전략'을 가동할 수 있다.
신약 만드는 선도 기업은 언제쯤?
삼바가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대내외적 평가를 받을 것이냐는 결국 신약 개발에 달려있다. 화이자·모더나·로슈·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선두 주자들은 공히 신약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한 후 그 독점력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신약은 특허권이 만료될 때까지 시장을 독점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막대한 연구비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다. 전 세계 여러 선진국에 석·박사급 연구원 수천 명과 연구실 네트워크를 보유한 빅 파마는 동시에 여러 개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개설할 여력과 체력을 갖췄다. 일례로 지난해 화이자는 매출액 대비 17%의 금액을 연구개발(R&D)에 투자했고 로슈는 23%를 지출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R&D 지출액은 매출액의 4분의 1 이상인 26%에 달한다.
아스트라제네카(AZ) 영국 글로벌 본부에선 2000명 이상의 연구원이 신약 개발에 종사한다. AZ는 지난해 매출액의 26%인 97억달러(약 13조9000억원)를 신약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 사진=AZ 홈페이지 캡처
원본보기 아이콘반면 삼바의 R&D는 매출 대비 5.9%(2021년)에 불과하고 그 규모도 아직 미미해, 이른바 빅 파마(Big Pharma)들과 직접 경쟁할 체급은 아니다. 이는 위탁생산 수주를 늘리기 위해 공장 및 설비 투자가 최우선사항일 수밖에 없는 삼바 사업 모델의 한계이기도 하다.
다만 삼바의 장기적 사업 목표 역시 신약 개발일 것이므로 성급한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 삼바보다 먼저 바이오시밀러(특허가 만료된 신약을 본떠 만든 복제 바이오의약품) 사업에 뛰어든 셀트리온의 경우, 신약 발굴 및 임상시험 경험이 풍부한 해외 업체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신약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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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바 또한 셀트리온과 유사한 전략을 구사한다. 삼바는 삼성물산과 함께 1500억원 규모 '라이프 사이언스 펀드(life science fund·SVIC 54호 신기술투자조합)'를 조성, 제약 선진국의 신약 개발 기업을 물색 중이다. 지난 3월 미국 유전자치료제 개발 기업 '재규어진테라피'에 첫 투자를 진행했고, 지난달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최적화된 약물 전달체를 만드는 바이오 기술 기업 '샌다'에 1500만달러(약 215억원)를 투자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송현도 인턴기자 dos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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