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독서] 세상을 주무른 경제학에 농락 당했다
주류 경제학 7가지 명제 해부…"한계 알면서 맹신' 학자들 꼬집어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올해 4월16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파이어파이팅(Firefighting)'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글쓴이는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헨리 폴슨 전 미 재무부 장관과 그의 후임자 티머시 가이트너였다. 2008년(당시 가이트너는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일종의 회고록이었다. 버냉키 의장은 출간 당시 한 인터뷰에서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파생상품과 같은 금융 혁신 상품이 안전할 것이라고 맹목적으로 믿었다"고 털어놨다.
'경제학의 7가지 거짓말'을 쓴 제프 매드릭은 서문의 첫 문장에서 이른바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도대체 당신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냐고 직격탄을 날린다. "과거 수십 년간 주류 경제학을 지배해 온 주류경제학 이론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였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나타난 대침체를 야기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거의 한 세대를 지나는 동안 주류 경제학 이론들이 정설로 굳어지면서, 지금의 경제학자들은 이를 비판하는 것은 고사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매드릭은 2008년 금융위기 뒤 많은 선진국 경제가 '확장적 긴축'이라는 상식에 어긋나는 정책을 시행했다고 꼬집는다. 확장적 긴축은 19세기 초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이(1767~1832)가 주장한 "공급이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일명 '세이의 법칙'의 법칙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매드릭에 따르면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1936년 저서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1936)'에서 이미 현대 경제학에서 '세이의 법칙'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다시 말해 용도폐기된 이론을 2008년 금융위기의 대응책으로 밀어부친 것이다. '세이의 법칙'은 매드릭이 지적하는 현대 주류경제학의 7가지 거짓말 중 하나다. 매드릭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출신의 미국 저술가다.
매드릭이 첫 번째 지적하는 거짓말의 현대 경제학 이론의 초석으로 여겨지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매드릭은 '세이의 법칙' 등 나머지 여섯 개 거짓말은 '보이지 않는 손'을 오용ㆍ왜곡해서 파생된 오류라고 꼬집는다. 분명 한계를 갖고 있음에도 후대 경제학자들은 마치 모든 문제를 '보이지 않는 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맹신했다는 것이다. 이는 스미스의 의도와도 다른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매드릭은 케인스와 함께 20세기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경제학자로 꼽히며 시장 근본주의자이자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을 가차없이 난도질한다. 매드릭은 책에서 '프리드먼의 어리석음(Friedman's Folly)'이라는 용어를 수시로 언급한다.
프리드먼은 자유경쟁시장 신봉자였다. 정부의 개입이 없어도 자유경쟁시장이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를 보호하고 이들 간의 이해관계를 원만하게 조정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자유경쟁시장 아래에서 정부의 역할은 거의 없다고 보았다. 프리드먼의 영향을 받은 현대 주류경제학은 시장경제가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고 운영하는 원리이며 정부를 대체할 수 있다고까지 평가했다. 또 현재 세계경제의 성장과 발전에 정부가 기여한 바는 거의 없으며 정부는 그저 시장경제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도록 재산권을 보장하고 관련 법과 제도를 유지하면 된다며 그 역할의 제한을 주장했다.
프리드먼이 정부의 역할이 최소화된 자유방임적 시장경제를 옹호한 이유는 자유방임적 시장경제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이상적이고 공정한 소득분배를 달성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또한 사회 구성원의 개인적 자유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믿음이 잘못 됐음을 보여준다고 매드릭은 꼬집는다. 미국의 경우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0년에는 10% 정도였으나 최근 20%를 넘어섰다. 소득 불평등의 정도는 1920년대 이래 가장 심각하다. 지난 30여년간 미국 흑인의 실업률은 백인 실업률의 두 배 수준을 꾸준히 유지했고 흑인의 범죄율은 높아졌다. 1979년부터 최근까지 관리자 등을 제외한 생산 노동자와 비감독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고작 3% 정도 상승했다. 따라서 2000년대 미국 남성 노동자의 평균 실질임금은 1970년대 초반보다 낮으며 측정법에 따라서는 1960년대보다 낮은 결과도 나타난다. 임금의 정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이미 오래 전부터 배태돼있던 셈이다.
매드릭은 최근 '신제도주의 경제학(New Institutional Economics)'의 등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신제도주의 경제학은 경제적 성과에 대한 제도의 역할을 중시하며 그 제도의 실체로서 정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2012년 3월 미국에서 출간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를 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대런 애스모글루 교수와 하버드대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신제도주의 경제학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포용적 경제제도와 이를 성취하기 위한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포용적 경제제도는 소수의 엘리트만이 아닌, 광범위한 사회 계층에 대해 재산권을 안전하게 보장하고 공평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포용적 경제제도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요구된다."
매드릭이 주장하는 나머지 거짓말 네 개는 물가안정목표제, 효율시장가설, 자유시장경제 확대가 경제적 번영을 꾀할 수 있다는 세계화, 마지막으로 매드릭은 경제학이 과학이라는 주장은 경제학자들의 자기 기만이라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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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매드릭 지음/박강우 옮김/지식의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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